[글로벌칼럼] 결국 연착륙을 선택한 프란치스코 교황

(가톨릭신문)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1년 시작한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세계주교시노드가 마무리됐다. 이번 시노드는 시작부터 많은 비판이 따랐다. 그중 하나는 시노드가 진보적인 목소리들로 채워져,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총체적인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자면, 이들은 여성의 성직과 성소수자에 대한 교회의 지원을 바라는 많은 이들이 공식 대의원으로 시노드에 참가한 반면, 전통적인 라틴어 미사 지지자들과 저명한 생명운동가들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최종문서에 대한 투표 결과를 살펴보면, 이 같은 비판이 어느 정도 사실로 보일 수도 있다. 355명의 참가자 중 대부분은 155개의 항목에 대해 압도적으로 찬성했으며, 그 결과는 대체로 352대3, 350대5와 같은 형태를 띠었다. 유일하게 300명 이하의 찬성투표가 나온 항목은 여성 부제직에 관한 60번이었지만, 97명이 반대했다고 해서 그들이 보수적인 반대자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 항목의 내용은 “여성의 부제직 접근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열려 있다. 이에 대한 숙고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 문구는 명확한 ‘아니오’를 원하는 보수 대의원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었고, 그만큼 즉시 결정을 내리기를 원하는 진보적인 사람들 역시 실망감을 느꼈을 수 있다.


시노드에서의 진보적인 분위기가 가장 확연히 드러난 순간은 10월 24일, 교황청 신앙교리부 장관인 아르헨티나의 빅토르 마누엘 페르난데스 추기경이 약 100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여성의 역할에 대해 논의한 공개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참가자들은 이전에 페르난데스 추기경이 여성 부제직에 관해 “긍정적인 결정을 내릴 여지는 아직 없다”고 한 발언도 추궁했다.


페르난데스 추기경을 전통주의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물겠지만, 페르난데스 추기경은 사실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사랑의 기쁨」에서 이혼 후 재혼한 신자들에게 영성체를 허용하는 문을 열었던 인물로, 2023년 12월에는 동성애자에게 교회의 축복을 허용하는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의 초안을 작성했다. 그럼에도 페르난데스 추기경은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참가자들에게 자신은 진보적이라고 이해시키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페르난데스 추기경은 회의에서 12개의 질문을 받았고, 대부분 비판적인 내용이었다. 질문 중 하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시로 설립된 10개의 연구 그룹 중 왜 여성 부제직 연구 그룹만 교황청의 부서에 맡겨졌냐는 것이었다. 이는 전혀 시노드스럽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또 다른 질문자는 국제신학위원회가 1997년 여성 부제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문서가 왜 공개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따졌다. 그러면서 “지금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페르난데스 추기경은 종종 수세에 몰렸고, 자신은 과거의 전형적인 교황청 관리와는 다르다고 항변했다. 이어 “중세에 갇혀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어떻게 성령께서 이끄시는지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자”고 당부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진보로 편향된 이번 시노드에서 조심스러우며 개혁적이지 않은 결과물이 나온 것이 의문이다. 최종문서를 보면 대체로 개혁과 전통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는 신중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급진적인 변화를 지지하지 않았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교회의 대격변은 미미한 진동에 불과했던 셈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보수적인 소수파가 예상보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일 수 있고, 대의원들이 지난 시노드에서 벌어진 논란들에 피로감을 느껴 평화로운 결말을 바랐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시노드를 주재한 프란시스코 교황이 부드러운 결말로 이끌었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교황은 많은 민감한 문제들을 시노드 테이블에서 제외했고, 시노드 여정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교황은 이전의 시노드와는 달리 후속 권고를 발표하지 않고 대신 최종문서 자체에 교도권적 권위를 주었다. 이는 시노드의 결과에 실망한 활동가들이 교황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기대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교황은 왜 이런 길을 갔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독일 교회의 시노드의 길이 일으킨 분열의 위험이 교훈이 되었을 수도 있고, 2025년 희년이 교회 내분으로 그늘지는 것을 막고 싶은 바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교황은 누군가의 상상력을 휘젓지도 큰 분열 없이 시노드를 마무리 지었다. 달리 보면, 교회 내 보수파가 많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시노드를 제정했던 의미를 잘 계산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시노드의 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분열과 대립이 심각한 오늘날, 비록 그 누구도 충분히 만족시키지는 못했지만, 이토록 대규모의 자문단 활동이 모두를 하나로 묶었다는 것은 작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작은 기적은 아니다.



글 _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