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 신나셨네!

(가톨릭신문)

나의 세례명은 비비안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영세를 받았고 주일마다 꼬박꼬박 미사에 나갔다.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도 나는 성당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로 기도를 드렸으며, 대학 합격자 발표를 보러 가기 전날도 “한 번만 도와주세요, 하느님!”이라며 성당에서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다. 친정과 시댁 모두 골수(?) 가톨릭신자라 결혼식도 성당에서 했고 두 아이 모두 유아세례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새벽 미사 드리러 가는 소리를 듣고 자란 나의 신심은 한 마디로 굳건했다. 그랬던 내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성당에 발길이 뜸해지다 어느날부터인가는 미사 참례를 전혀 하지 않게 됐다. 주일미사에 나가지 않는 건 대역죄를 짓는 거라 생각하는 시어머님은 이런 나를 보며 가슴앓이를 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어려서부터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고 자란 이유는, 하라면 더 하지 않는 내 성격을 부모님도 아셨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머님이 자꾸 가라고 하니 더 가기 싫어졌다고나 할까. 거기다 변명을 조금 덧붙여 보자면 주말에도 일을 하고 있어 미사에 참례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나는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주말에도 일을 하고 있어서 미사에 참례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전에는 잡지사에서 편집 에디터와 기사 쓰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출퇴근 시간이 5시간 가까이 소요 되다 보니 도저히 못 하겠다 싶어 그만뒀다. 하지만 어머님은 아직도 내가 잡지사에 다니고 있는 거로 알고 계신다. 며느리가 편의점에서 밤을 꼴딱 새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면 가슴 아파하실까 봐 그냥 말씀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11월부터 가톨릭신문에 칼럼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때가 된 것인가!’ 계속 핑계를 대며 성당과 멀어지고 있는 나를 하느님이 더 이상 두고만 보실 수 없다, 생각하셔서 이렇게 불러주신 게 아닐까, 하는.


미사에 참례하라며 어머님이 수시로 보내오는 문자 중에 제일 나중 것을 읽어 보았다.


‘어멈아, 이번 주부터는 주일미사 나가야 해. 일주일에 1시간을 참석 안 하면 어떡해. 내가 지쳐서 어멈 때문에 소화가 안 돼. 오늘부터 꼭 실천해.’


어머님이 나 때문에 소화도 안 되신다는데 어찌하겠나. 편의점에서 퇴근하고 오면 잠이 쏟아지겠지만 주일미사에는 어떻게든 참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랜만에 동네 성당을 찾아 성모님께 기도를 드리고 예쁘게 꾸며져 있는 화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어머님께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 저 이제 미사 열심히 나갈게요. 걱정 마세요.’


그러자 어머니에게서 바로 답변이 날아왔다.


‘잘했다. 고마워. 빠지지 말고 잘 다녀. 너무 기쁘다 어멈. 사랑해.’


우리 어머니, 완전 신나셨다. 평생을 신앙생활 안에서 살아오신 분이라 며느리가 미사에 참례 안 하는 것 때문에 속을 많이 끓이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사람은 다 때가 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누가 등 떠밀어서 억지로 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고 제가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하느님!”



글 _ 김양미 비비안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