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조취서공(鳥聚鼠拱)

(가톨릭신문)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수원교구 북여주본당 관할의 도전공소(옛 지명: 원심이공소)가 있는 곳으로, 1869년 기사년 박해 때 전생서(典牲暑, 지금의 용산구 후암동 일대)에서 살던 정 안토니오가 박해를 피해 이곳에 와서 마을을 이룬 유서 깊은 천주교 교우촌이다. 「박순집 증언록」과 「치명일기」에 의하면 정 안토니오의 아내 임 가타리나는 당시 포도청에 체포되어 순교했는데, 임 가타리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녀인 박황월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사촌 이모이기도 하다.


도전공소는 1887년 강원도 담당 드게트 신부가 작성한 교세 통계표에 의하면 신자수가 58명인 꽤 큰 교우촌으로, 1900년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조선교구 제8대 뮈텔 주교가 사목 방문을 하기도 하였고, 현재까지도 옛 공소 건물에서 본당 주임 신부가 방문해 미사를 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 마을회관 마당에는 40년이 훨씬 지난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녹음이 짙은 여름철 저녁이 되면 수많은 새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듯 시끄러울 정도로 재잘거린다. 마을 쉼터인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더위를 피해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묵주기도를 바치며 저녁기도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이 쉼터를 지날 때마다 새들의 재잘거림과 교우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떠오르는 대목이 있다. 다산 정약용이 1795년 주문모 신부 실포(失捕) 사건 후 금정역의 찰방으로 좌천되어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라는 정조의 명을 받고 활동하면서 남긴 일기인 「금정일록」(金井日錄)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일기에서 다산은 관찰사 유강에게 보낸 편지에서 천주교 신자 체포의 어려움을 나타내면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또 모두 그림자를 감추고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속이고 숨기는 행실이 많습니다. 말을 타고 강변을 달리다 보면 박넝쿨 얹힌 울타리와 오두막집들이 이따금 마을을 이룬 것이 보일 뿐입니다. 저들이 그 속에 몰래 숨어서 엎디어 새처럼 모여서 쥐처럼 손을 모으는 것을 무슨 수로 적발하겠습니까?”라고 했다.


‘조취서공’(鳥聚鼠拱)!!  머리를 맞대고 모여서 쥐처럼 두 손을 맞잡는다는 이 기막힌 표현에서 나는 아연실색을 금치 못했다. 정약용은 초창기 임시 성직자제도의 10인의 신부 중 한 사람이었고, 주문모 신부를 탈출시키는 장본이기도 하였다. 그런 정약용이 진심으로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는데 앞장섰을 리 만무하다.


지금은 박해시대처럼 그림자를 감추고 동과 서에서 번쩍 속이고 숨기며 몰래 숨어서 기도할 일도 없다. 더군다나 적발할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들의 기도 모습과 신앙생활은 어떠한가….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임에도 쉼터 느티나무에서는 새들이 모여 여전히 회의를 하고 있다.


글_박용식 스테파노(수원교구 북여주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