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동체에 신앙 원동력 되니 기쁨 두 배”

(가톨릭신문)

대전교구 배나드리 성지 인근에 있는 한 묘지는 오래전부터 천주교를 믿다 순교한 분의 무덤이라는 말이 동네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구전으로 전해진 이야기였지만 그 지역 신자들은 용동리에 살다 해미에서 순교한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의 묘지라 믿었고 그의 순교정신을 따르며 신앙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지난 11월 1일 대전교구장 김종수(아우구스티노) 주교는 교령을 통해 “충남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 산 9-6번지에서 발굴된 유해가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의 유해라고 선언하며 이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배척한다”고 밝혔다.


신자들의 믿음과 순교자 현양을 위한 삽교본당 주임 신부의 노력이 더해져 구전되던 이야기는 구체적인 현실이 될 수 있었다.


삽교본당 주임 최일현(루카) 신부는 “오랫동안 용동리에 사신 신자분들이 무명의 묘지에서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의 흔적을 찾길 간절히 원하셨고, 그 증거를 찾는 과정에서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느낄 수 있었던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충청도 덕산 주래(현 삽교읍 용동리) 양반집 출신 인언민(1737-1800)은 한양에서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공주로 이주했다. 그러나 1737년 정사박해 때 붙잡혀 해미에서 돌에 맞아 순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3세였다. 이후 그의 시신이 해미에 묻혔을거라 추정했으나 용동리 마을에서는 교동 인씨 선영의 무덤 중 하나가 복자의 것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었다.


“성당 어르신들이 어렸을 때 무덤가에서 놀고 있으면 어른들이 ‘천주교를 믿다 돌에 맞아 돌아가신 분의 무덤이니 함부로 올라가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셨어요. 유난히 봉분이 컸다고 기억하셨죠. 여러분들이 같은 증언을 하시니 그 무덤이 진짜 복자의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최 신부는 신자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 팀을 꾸려 체계적으로 자료 조사에 나섰다. 마을에 오래 산 신자들 덕분에 교동 인씨 문중과 접촉이 가능했고, 족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무덤을 관리하던 후손의 자녀에게서 무덤에 대한 증언도 들을 수 있었다.


“족보에서 선영에 인언민 복자가 매장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실제 무덤 위치와 족보상의 위치가 일치한 것도 확인했죠. 주민과 후손들의 증언을 모아 교구 교회사연구소에 자문을 구했고,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교구장 주교님께 묘소 발굴을 청원했습니다.”


발굴을 진행한 결과, 유골의 토양화 진행 정도가 심해 유전자 분석을 통한 개인식별 정보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나 무덤 위치, 매장 방향, 구전증언, 목관의 연륜 연대 등을 토대로 재판관 한정현(스테파노) 주교는 “발굴된 유해가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라는 진정성이 입증됐음”을 선언했다. 이번 판결은 한국 교회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삽교본당 공동체에도 전환점이 됐다.


“삽교본당 신자는 고령이신 분들이 대부분이세요. 몸이 힘드니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죠. 63세에 순교한 복자 인언민은 고령이신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날까지 하느님을 잘 섬기며 신앙인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을 이번 판결을 통해 얻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