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김종필 작가

(가톨릭신문)


흙의 매력에 빠져 조각의 길로


어릴 적에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사실 그 전까지는 조소라는 걸 잘 몰랐어요. 학원에서도 조소를 가르치는 곳도 없었고요. 접할 기회가 없었던 거죠. 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술교육과에 입학했어요. 대학에서는 여러 미술 장르에 대해서 배우는데, 그때 처음으로 조소를 접했어요. 흙으로 빚어 조형물을 만드는 이 작업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제가 지금까지 했던 평면 작업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매력을 느꼈어요.


처음에는 사범대학에 다녔으니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학교 선배들도 대부분 임용고사를 치르고 학교 선생님이 됐어요. 그런데 조소를 접하고 나서는 ‘이걸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 4학년 때까지도 임용고사를 볼 준비를 했는데, 그때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일반대학원에서 조각을 전문적으로 더 배웠어요. 대학원 교육은 대체로 도제식으로 가르치는데, 은사님께서는 점토로 인물을 만드는 소조를 하셨어요. 저고 그렇게 소조의 맛을 들이게 된 거죠.


대학원을 졸업하고는 대형 공공조각 프로젝트를 몇 개 맡았어요. 사실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팔아 생활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조형물 프로젝트를 종종 맡을 수 있었어요. 학교에서 강사를 하면서 뭔가 목돈이 필요할 때 쯤엔 공공 프로젝트를 맡았어요. 하느님의 섭리인가 싶을 정도로요.


그러면서도 꾸준히 제 작품을 만들고 전시회를 열었어요. 경제적으로 큰 도움은 안 되었지만 전시회에서 제 소품 작품을 사주시는 분들을 보면 굉장히 힘이 났어요. ‘아 내 작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시는구나’ 하고요. 이걸 계속 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어요.



성미술 전문작가의 길로


제가 태어난 곳은 전북의 한 교우촌이었어요. 아주 어릴 적 대전으로 이사를 와서 많은 기억이 없지만, 마을 가운데에 공소가 있었어요. 신앙을 가지신 부모님 덕에 하느님을 알게 됐죠.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성당은 제 놀이터였어요. 친구들과 놀러도 가고 공부하러도 가고요. 그러면서 성당에 있는 성미술 작품에 노출이 돼 있었나 봐요. 항상 성미술 작품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조각을 하다 보니 저도 만들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각을 하면서 인체를 다뤘으니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만들어 보니 그냥 단순히 만들면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공부도 많이 하고 묵상도 많이 해야했어요. 성미술 작품은 굉장히 어렵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처음 만든 성미술 작품은 제가 다니던 대전교구 문창동성당 성모상이었어요. 성당에 조그마한 파티마 성모동굴을 조성했는데, 본당 신부님께서 저보고 만들어보라고 하셨어요. 다른 파티마 성모상을 흉내 내서 만들었는데, 만들면서 성모상마다 다 양식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어요.


문창동성당 성모상 제작 이후, 대전교구 성령쇄신봉사회 새얼센터에 십자가의 길 14처를 봉헌하면서 교회미술 전문작가로 전향하게 됐어요. 십자가의 길을 처음 만들어서 잘 모르기 때문에 굉장히 연구를 많이 했어요. 각 처에 관한 묵상도 많이 하고요. 그러면서 십자가의 길은 14처 모두가 역작처럼 하나의 작품이지만, 각 처가 각각 하나의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한 점 한 점에 나를 쏟아부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요. 복음에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를 주제로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면 내가 평생을 해도 이걸 다 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성미술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어요.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도움 되는 작품 만들고 파


성미술 작업을 전문적으로 하면서 다행스럽게도 계속 일이 들어오고 있어요. 최근에는 진상성지에서 작업을 했어요. 야외 십자가의 길과 성당 십자가의 길과 십자고상을 설치했어요. 주중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말에 대전 집 근처에 있는 금산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해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요. 항상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주로 십자가의 길을 작업하는데 똑같은 작품을 설치하면 안 되잖아요. 새로운 것에 대한 작가로서의 갈증도 있고요.


제가 우선으로 두는 것은 신자들이 기도하는 데 분심이 들게 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에요. 제 작품이 도구가 돼 조금이라도 신앙을 두텁게 하는 데에 일조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기쁘고 보람을 느껴요. 작업을 하며 ‘예수님은 어떤 기분이셨을까’를 공감해야 하기에 이러한 스스로도 신앙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 밑거름이 되고 있어요. 작품을 하면서 성경도 일고, 조금이라도 깊게 되새겨보기 위해 묵상하고요.


요즘엔 성지 등을 다녀보면 훌륭하게 좋은 작품들로 잘 꾸며놓은 게 느껴져요. 어떨 때 제가 작품을 보고 감동하고 더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작가들이 고민한 흔적들이 보이는 거죠. 그래도 더 많은 젊은 작가들이 교회미술, 성미술 작업에 참여하면 좋겠어요. 많은 분들이 참여하면 지금보다도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 김종필(라파엘) 작가는
1970년 전북에서 태어났다.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한남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앵베르센터 옥상정원 십자가의 길과 솔뫼성지 야외 십자가의 길, 갈매못순교성지 십자가의 길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교회에 봉헌했다. 현재 한남대 사범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성미술활동을 하고 있다. 2016년 제20회 가톨릭미술상 조각부문 본상을 받았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