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강변의 무코리타(2023)' 포스터
매일 죽음의 그림자를 안고 살아가는 인생보다 더 무망한 삶이 있을까요? 죽음이란 그저 삶을 옥죄는 두렵기만 한 걸까요? 이 무거운 주제를 물 흐르듯 담아낸 영화가 있습니다. ‘카모메 식당’으로 친숙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최신작 ‘강변의 무코리타’입니다.
작은 강을 끼고 있는 어촌 마을에 갓 출소한 청년 ‘야마다’가 찾아옵니다. ‘무코리타 하이츠’란 이름의 공동주택에 거처를 정했는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도무지 정상으
로 보이지 않습니다. 다짜고짜 남의 집에 찾아와 밥을 먹는 ‘시마다’, 멀쩡한 듯하지만 때때로 엽기적인 언행을 일삼는 집주인 ‘미나미’, 어린 아들과 함께 묘석(墓石)을 팔러다니는 ‘미조구치’…. 안 그래도 사는 일이 허망한 야마다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지요. 그 와중에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의 부고를 받게 됩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원망 가득한 젊음을 살아온 전과자 야마다의 일상에 죽음이 침입해 들어오고, 고독사했다는 아버지는 아들의 의식을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무코리타 하이츠’의 괴팍한 이웃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등에 진 채 살아가는 이들이었습니다. 아들을 잃고, 남편을 여의고, 사랑하는 이들의 부재를 온몸으로 느끼며 버거운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던 것이지요.
“어떤 인간이라도 ‘없었던 사람’으로 만들면 안 돼!”
언뜻언뜻 던지는 그들의 대사는 바닥 모를 슬픔과 자책을 머금었습니다. 그렇게 휘청이는 사람들이 ‘무코리타 하이츠’ 안에서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 보이며 서로를 다독입니다.
‘카모메 식당’에서 음식이 주는 따뜻한 위로를 선사했던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이번에도 ‘밥’에 진심을 불어넣습니다. 혼자 먹는 식사를 ‘더불어 어울리는 밥상’으로 바꿔놓음으로써 ‘그래도 살아보자’고 다짐하게 합니다. 죽음의 그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삶을 바라보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무코리타’는 ‘하루를 30분의 1로 나눈 시간’를 뜻하는 불교용어인데, 영화에서는 노을이 지고 어둠이 드리우는 때로 묘사되지요. 낮이 밤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듯 삶과 죽음이 절로 어우러지는 길을 함께 찾아보자는 감독의 메시지가 스몄습니다.
11월 위령성월, 죽음과 이별을 묵상하는 이 시기에 이상하지만 따뜻한 이웃이 모여 사는 곳 ‘무코리타 하이츠’로의 여행을 강추합니다!
글 _ 변승우 (명서 베드로, 전 가톨릭평화방송 TV국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