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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새별 대표. 사무실 한쪽 공간에는 김 대표가 작업할 때 사용하는 장비들이 가득하다. |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이를 떠나보낸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슬픔은 달랠 길이 없다. 그저 사랑하는 이를 잘 떠나보내야 할 뿐이다. 사랑과 그리움을 가득 담아서.
이렇듯 만남은 항상 이별과 함께한다.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이별은 있다. 우리가 늘 좋은 만남을 바라듯 좋은 이별도 필요하다.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타인의 삶’. 11월 위령 성월을 맞아 세상을 떠난 이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돕는 특수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 김새별(예비신자, 유품정리사) 대표를 만났다.
마지막 이삿짐센터김새별 대표를 만나기 하루 전 저녁. 유튜브를 통해 먼저 김 대표를 만났다. 밤늦은 시간까지 김 대표를 따라 유튜브 영상 속 고독사 현장을 다녔다. 그러다 마음이 먹먹한 채로 잠이 들었다.
김 대표를 만나기 위해 다음 날 아침 일찍 청주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청주로 내려가는 길. 차창 밖으로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날씨 탓일까. 어젯밤의 먹먹한 마음이 이어지는 듯했다.
김 대표가 알려준 주소를 검색해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구제만능’이라는 가게가 나타났다. 남성복, 숙녀복, 아동복, 침구류를 판매하는 가게였다. ‘여기가 아닌가.’ 한참 동안 가게 앞을 서성이는데 김 대표가 인사를 건네며 문을 활짝 열었다.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 그렇게 김 대표를 따라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한 마지막 이삿짐센터로 들어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다사무실 모습은 밖의 모습과는 달랐다. 한쪽 벽면에는 다양한 공구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세탁기 주변에는 빨아서 널어놓은 장갑과 수건이 가득했다. 사무실 한쪽 공간에는 김 대표가 현장에 나갈 때 사용하는 장비들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일반적인 유품 정리는 아니고 고독사와 자살, 살인사건 현장에서 특수청소를 하고, 돌아가신 분들의 유품 정리를 하고, 나머지 이삿짐을 나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2009년부터 특수청소를 하고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해왔다. 그전에는 장례지도사로 13년간 일했다. 장례지도사를 하면서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렇게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도왔는데 세상에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로 김 대표는 유품정리사가 됐다. 한 달에 평균 15건, 지금까지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마지막 이사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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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새별 대표가 현장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김새별 대표 제공 |
흔적을 지우고 삶을 새기다 “저희가 마지막 이사를 하러 왔는데 잘 정리해서 잘 보내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저희가 작업하는 동안 무탈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지켜봐 주십시오.”
김 대표는 현장에 가면 가장 먼저 고개 숙여 묵념한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한 마지막 이사를 시작한다.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았던 흔적을 지우는 과정인데 폐기라고 하면 마음이 아프잖아요. ‘마지막 이사’라고 하는 게 고인을 위해서 좋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 대표가 자신을 ‘마지막 이삿짐센터 직원’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김 대표는 먼저 고인이 세상을 떠난 자리를 정리한다. 그다음 유품을 정리한다. 유품은 사진과 고인이 생전에 애착을 보였던 정서적인 유품과 현물가치가 있는 유품으로 구분한다. 청소하고 유품을 정리하는 시간은 33㎡(10평) 기준 8시간이 넘게 걸린다. 고된 작업에 땀은 비 오듯 흐르고 고인의 몸에서 나온 분비물이 부패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지방과 단백질이 눌어붙은 바닥은 빙판처럼 미끄러워 넘어지기 일쑤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모든 현장, 모든 유품을 기억하고 현장에서 매번 보람도 찾는다.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서 다른 사람이 새 삶을 꿈꿀 수 있는 곳으로 바꿨다는 생각, 제가 마지막 이사를 잘 도와드렸다는 생각을 하면 보람을 느끼죠.”
김 대표는 모든 정리를 끝낸 후 불을 끄고 나오면서 고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음 생에는 외롭게 사시지 마세요.”
슬퍼하지 않는 죽음김 대표는 유가족이 고인이 아니라 고인이 갖고 있던 금품을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볼 때면 회의감도 든다. “집에 도둑이 든 것처럼 장롱문이 다 열려있고 이불도 꺼내서 뒤집어놓고 그러죠. 순서가 있잖아요. 아버지 영정사진이 없어서 돌아가신 자리를 덮어놓고 영정사진 찾는 것과 금품을 찾는 것과는 다르죠.” 그는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많아서 이런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가끔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고인이 키우던 강아지도 있거든요.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으면 그냥 버리라고 해요.” 김 대표는 고인이 키우던 강아지를 데려와 키운 적도 많다. 키우던 강아지가 죽으면 고인이 살던 곳 근처에 가서 묻어주고 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유가족이 고인이 키우던 물고기를 버리라고 해서 데려와 사무실에서 키우고 있다. 고인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 준 물고기는 지금 김 대표 옆에서 그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힘 “지금은 그런 분들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현장에 가면 막말하고 무시하고 그랬어요. 밥 먹으러 식당에도 못 갔어요. 쫓겨날 때도 많았고요.”
김 대표가 특수청소와 유품 정리를 시작했던 초기에는 면박을 많이 당했다. 소금을 맞은 적도 있다. 가격 문의 후 비싸다고, 도둑놈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폐기물 처리비용, 인건비 등을 제외하고 나면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김 대표는 항상 고인의 자식,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일을 해왔다.
주변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도 온전히 김 대표의 몫이었다. “고인의 메모장이나 사진을 보면 그리움이 묻어 있고 외로움이 묻어 있어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모습이 아닌 고인의 나쁜 모습만 보고 기억해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고인에게도 아픈 사연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김 대표는 다시는 외로운 죽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썼다. 기회가 되면 방송에 출연하고 언론 인터뷰에 응하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수익금, 기부금은 연고가 없는 이들,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쓴다. 2022년 3월쯤에는 사단법인 ‘세이브더라이프’를 만들 계획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돕고 싶어요. 사단법인도 그런 측면에서 하려고 하는 거고요. 인생의 최종 목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단법인을 만들어서 고인의 가족과도 함께 봉사하려고 합니다. 그분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요.”
김새별 대표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7계명1. 삶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정리를 습관화하라.
2. 직접 하기 힘든 말은 글로 적어보라.
3. 중요한 물건은 찾기 쉬운 곳에 보관하라.
4. 가족들에게 병을 숨기지 마라.
5. 가진 것들은 충분히 사용하라.
6. 누구 때문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
7.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다.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남겨라.
“정말로 남는 것은 집이 아니고 학벌이 아니고 돈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내가 죽은 뒤에도 세상 한구석을 따뜻하게 덥혀줄 것이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중에서)
현장 영상 QR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