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에른 킴호’의 숨은 보석 프라우엔뵈르트 수녀원

(가톨릭평화신문)
프라우엔섬과 프라우엔뵈르트 수녀원. 허브 정원과 성물방을 운영하며 순례자들에게 신앙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프리엔·헤렌섬과 프라우엔섬을 잇는 유람선은 수녀원 뒤편 선착장에 정박한다.

독일 바이에른 지방은 그리스도교 복음이 전해진 뒤 가톨릭 신앙을 꾸준히 고수한 지역으로, 하늘과 땅이 맞닿는 영적인 장소가 많습니다. 그 남쪽 한가운데에 빙하가 녹아내려 탄생한 킴호(Chiemsee)가 있는데요. 크기가 80㎢로 ‘바이에른의 바다’라 불릴 만큼 광활합니다.

뮌헨과 잘츠부르크를 잇는 아우토반과 가까워 여름이면 수많은 관광객이 들르는 휴양지이지요. 무엇보다 해발 1669m의 캄펜반트와 산봉우리들이 호수를 둘러싸며 장엄한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어, 일상 소음에서 벗어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신앙이 하나 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뮌헨 중앙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바이에른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 속을 달려 호숫가 마을인 프리엔 역에 도착합니다. 역에서 가까운 곳에 우리를 순례지까지 데려다 줄 유람선이 정박해 있지요. 킴호에는 세 개의 섬이 있습니다. 대부분 가장 큰 섬인 헤렌섬(Herreninsel)을 갑니다.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성을 지은 ‘동화의 왕’ 루트비히 2세의 웅장한 헤렌킴제성을 보러 가는 겁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처럼 절대 왕정을 동경했던 루트비히 2세는 1878년 섬에 베르사유궁을 본떠 큰 궁을 짓기 시작합니다. 비록 완공하지 못했지만, 거울의 방 등 내부의 화려함과 넓은 정원은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갈 곳은 그 옆의 조그만 섬인 프라우엔섬(Fraueninsel)입니다. 
프라우엔뵈르트 수녀원 성당과 종탑. 782년 성모 마리아의 자헌을 기리며 당시 잘츠부르크의 성 비르질리오 주교에 의해 봉헌됐다. 육중한 탑은 중세 초 방어탑으로 쓰다가 훗날 종탑으로 개축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녀원

섬에 가까이 다가가면 선착장 너머 흰색으로 깔끔하게 칠해진 수녀원이 보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선착장 주변 레스토랑은 벌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수녀원 뒤편으로 마을이 있는데, 마을 주민을 위해 유람선이 옛날과 달리 마을 반대편 선착장에 정박하기에 수녀원 뒤편으로 우리가 들어가는 셈입니다.

이곳 프라우엔뵈르트 베네딕도회 수녀원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아빠티스좌 수녀원으로 꼽힙니다. 이 지역은 7세기 잘츠부르크에 선교지를 설립한 아일랜드계 스코틀랜드 수도자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진 곳이지요. 782년에 바이에른 아길로핑 가문의 타실로 3세 공작은 프라우엔섬에 수녀원을 설립합니다. 당시 헤렌섬에는 이미 남자 수도원이 있었지만, 북이탈리아의 랑고바르드 왕국 부마였던 공작은 이탈리아로 가는 루트에 아내와 함께 머무를 좀더 편안한 거처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는 것은 수도자로서 의무였으니, 설립자나 후원자의 숙식을 배려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9세기 들면서 수녀원은 쇠락의 길에 접어듭니다. 수녀원을 후원하던 공작 가문이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타실로 3세는 카롤루스의 사촌으로 봉신(封臣)이었지만, 랑고바르드 왕국과 혼인 동맹을 맺어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 통치를 두고 교황청과 갈등을 빚던 랑고바르드 왕국이 결국 프랑크 왕국에 합병되면서 타실로 3세도 수도원에 유폐되고 말지요. 그런 수녀원을 다시 일으킨 이가 이르멘가르트입니다.
킴가우 지역의 수호 성인인 복자 이르멘가르트의 석관(아래)과 석관 위 성화. 성해를 발굴한 후 1641년 지금 석관에 옮겨 모셨다. 이르멘가르트는 1928년 12월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자녀가 없던 많은 부부가 이곳에서 기도하며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수녀원 부흥 이끈 복자 이르멘가르트

카롤루스 대제의 증손녀인 이르멘가르트는 독일 남서부 부카우 베네딕도회 수녀원에서 교육받고 수도자로 살다가 857년경 이곳 수녀원장으로 임명됩니다. 이후 수녀원은 카롤루스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제국수녀원’으로서 발전합니다. 또 귀족 가문의 딸들을 교육하는 학교로서 중세 여성 교육의 중심지 역할도 했지요. 이곳에서 여성들은 문해력·성경 지식·음악·자수 등 다양한 학문과 예술을 익히며 신앙과 지성을 동시에 키울 수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큰 화재로 수녀원을 증·개축했지만, 수녀원 정문 건물과 성당은 초창기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수녀원 정원을 지나면 타실로 3세 시기에 지은 현관 건물이 보입니다. 이 건물에 공작 일행이 묵었을 겁니다.

몸을 돌리면 동네 묘지와 함께 수녀원 성당이 보입니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팔각형 종탑이 성당과 떨어져 있습니다. 그 묵중함과 좁은 창은 이 탑이 중세에 적의 침입 때 피신하는 방어탑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섬이란 위치는 수녀원이 지금까지 존속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종교개혁과 30년 전쟁의 혼란 속에서 수녀원은 외부 다른 수녀원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지요.
프라우엔뵈르트 수녀원 성당 주 제대. 초창기 성당이 907년 헝가리의 공격으로 파괴된 후 11세기 말 삼랑 형식으로 재건했다. 고딕 양식의 리브 볼트는 15세기에, 바로크 양식의 제대는 17세기에 건축됐다. 오른편 십자가상 아래 칼에 심장이 찔린 성모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성모님의 자헌을 기념하는 성당

수녀원 성당의 외형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단순합니다. 하지만 지붕 아래 고딕 양식으로 채색된 프리즈가 이곳이 수녀들의 기도 공간임을 드러냅니다. 성당 내부도 아름답고 세심하게 단장되어 있습니다. 다채롭게 채색된 그림과 별 모양의 천장을 처음 봤을 때 역시 수녀원 성당은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지요. 원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평평한 목조 천장이었는데, 15세기 말 고딕 양식의 천장으로 바뀌었고, 천장화는 1606년에 그렸습니다. 이르멘가르트 소성당 한가운데에는 제2의 설립자로 공경받는 복자 이르멘가르트의 무덤이 있습니다. 복자의 전구로 아이를 갖게 되어 감사하는 부부의 봉헌판들이 주변에 보입니다.

프라우엔뵈르트 수녀원 성당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自獻), 그러니까 성모 마리아께서 동정을 지키시고 평생 하느님 뜻을 기꺼이 이루시어 살아있는 제물이 되셨음을 기리는 곳입니다. 성당에는 성모님 삶을 그린 성화가 많은데, 특히 십자가 아래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칼에 찔리는 모습으로 묘사한 성모상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모습에서 우리 삶의 아픔조차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길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며, 힘과 용기·위로를 주시길 청해봅니다.
 
<순례 팁>

※ 뮌헨에서 프리엔까지 자동차로 1시간 30분, 기차(잘츠부르크행 EC, RB)로 1시간 소요. 유람선 선착장까지 도보로 이동(chiemsee-schifffahrt.de)

※ ‘스콜라스티카’ 손님 숙소가 있고, 성물방에서 수녀원에서 직접 생산한 식품 등을 살 수 있다. 수녀원 미사: 주일과 대축일 9:30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