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두드림

(가톨릭평화신문)

“여기가 A.A. 맞나요?”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Alcoholics Anonymous) 모임을 줄여 A.A라고 부른다. 이 모임은 단순하게 설명하면,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을 단주하기 위한 자조 집단이다. 전 세계 11만 8000개의 그룹, 한국에도 186개 그룹의 모임이 매주 있을 만큼 전 세계 최대 자조 집단 모임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모임의 장소이다. 당연히 알코올중독병원에 있어야 할 모임이 지역사회 내 복지관, 주민센터 그리고 성당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필요로 하는 모임이 성당에서 하고 있다니. 그것도 내가 당시 사목하고 있던 이주사목회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성당의 회합실이라니.

서강대학교 사회복지학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한 필수조건 중 하나는 소논문 2편을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에 투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만만치 않다. 이를 위해 어떤 분야를 연구할까 고민하기보다는 어떤 연구를 내가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학생으로서 중독은 가장 구미에 당기는 분야이다. 논문지도 교수님께서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장으로서 중독 연구를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누군가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가.’

문 선생님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상상 속에 그리던 전형적인 알코올 중독환자였다. 짧은 머리에 산전수전 다 겪으신 두툼한 얼굴, 잠바를 벗으면 문신은 몇 개 그려져 있을 것 같은 단단한 체격, 밖으로 나오시던 도중 잠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시며 마주친 그분의 첫인상은 내 상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혹시 신부님이세요? 그런데 신부님께서 무슨 일로 이곳에.”

순수한 어린양의 표정과 해맑은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애쓰고 또 애썼다. 무엇 때문에 이 모임에 참석을 했으며, 여기 계신 분 중에서 단 한 분도 원치 않으시면 바로 나가겠습니다 등등 생각보다 길었던 설명 뒤에 돌아온 짧은 한마디가 이 모임의 합격점을 받았음을 확신했다.

“저기에 앉으세요.”

모임 15분 전 미리 와 계셨던 다른 두 선생님은 문 선생님의 합격점을 번복할 마음보다 오히려 신부에 대해 궁금했던 그동안의 질문들을 털어놓으면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주셨다. 그 순간, 이 두 분은 가톨릭 신자분이시고 문 선생님은 부처님과 닮으셨으니 불교를 믿겠구나 확신하였지만 왜 이리 자꾸만 빗나가는지, 알고 보니 문 선생님은 열심한 천주교 집안이었고, 다른 두 분은 무신론자였다.

‘그래! 중독으로 소논문을 작성해야지!’

이러한 결심은 곧바로 사람을 만나는 일로 연결된다.

신학교에서 주로 하는 연구방법인 교회법을 고찰하거나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 아닌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그 안에 담긴 함의를 찾아내는 것이 사회복지에서 질적 연구로 논문을 쓰는 방법이다. 이로써 벌써 두 가지나 중독으로 논문을 쓰는 데에 충분조건을 채웠다. 하나는, 신부가 성당 회합실에서 하는 모임에 참석하는 일이 뭐 어려울까. 또 하나는, 신부인데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이 뭐 어려울까.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어렵다는 사실을 이 모임을 통해 깨달았다. 자꾸만 로만 칼라를 만지작거리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운다.
 

‘신부가 성당 회합실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매일 주차하는 공터에 있는 회합실에 들어가는 것이 이리 큰 용기를 필요로 하다니…. 휴.’

A.A모임은 공개와 비공개 모임으로 나뉘는데 이곳은 비공개 모임이다. 공개 모임과 달리 비공개 모임은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면 참석할 수 없다. 곧 모임 참석자 중 한 명이라도 허락하지 않으면 이 모임에 참석할 수 없으며, A.A모임은 어떤 종교적인 색깔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전정보가 추운 겨울날 땀으로 긴장하게 만들었다.
괜히 술에 취한 아저씨에게 창피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 ‘너처럼 우린 편안하게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야!’ ‘우리를 연구하고 싶어 인터뷰를 하겠다고! 우리가 무슨 동물원에 원숭이야!’라고 소리치는 분은 안 계시겠지? 설마. 그래도 성당 회합실인데 신부에게 그렇게까지 하실 분은 없을 거야. 이런저런 걱정을 안고 조심스레 문을 열어본다.

그 순간 처음으로 마주친 문 선생님!

(계속)


글 _ 이중교 신부 (야고보, 안양시 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 시설장, 사회복지학 박사)
2009년 사제품을 받았다. 2021년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여성 알코올의존자의 재발과 회복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안양시 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 시설장이며, 서강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