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병오박해 순교자 시복 100주년이제는 현양·교회사 대중화 나설 때

(가톨릭평화신문)
7월 5일 오후 6시 시작한 성체 강복. 시복 이후이기에 사도좌 제대 위 휘장이 걷혀 79위 복자화가 보인다. 복자 성해함을 현시하는 제대 앞에 비오 11세 교황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제공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이 100주년을 맞으면서 한국 교회 시복시성·현양 운동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선조들이 지킨 믿음의 역사로 이어지는 한국 교회사를 더 깊이 성찰하고, 신앙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25년 7월 5일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가 바티칸에서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시복됐다. 이때 한국 교회는 최초로 복자를 배출했다.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 속에서 이 소식은 한국 신자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았다. 그로부터 59년 뒤인 1984년 79위 복자는 병인박해 순교자 24위(1968년 시복)와 함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그것도 로마가 아닌 서울 여의도에서 우리 순교자들이 한국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성인품에 오르는 영광을 안은 것이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부위원장 원종현 신부는 “79위 시복은 조선 후기 이 땅에서 죄인으로 처형된 순교 신앙 선조들의 ‘신원 회복’과 다름없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 천주교회가 보편 교회 일원으로서 나라를 잃은 슬픔을 위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뜻깊은 사건”이라면서 순교자들의 삶을 드높인 79위 시복을 시작점으로 우리가 현양 운동과 교회사의 가치를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함을 강조했다.

마침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는 9월 14일까지 79위 시복과 함께 열린 바티칸 선교박람회 개최 100주년 특별기념전 Anima Mundi(아니마 문디, 세상의 영혼)를 선보인다. 1925년 희년을 맞아 열린 선교박람회는 전 세계 선교지에서 보내온 물품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로, 한국 교회도 참여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 신부도 “79위 시복은 한국 교회 시복시성 운동의 첫 결과물인 동시에 출발점이 됐다”며 “이를 뿌리 삼아 103위 시성과 124위 시복까지 이뤄질 수 있던 것”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조 신부는 “한국 교회가 79위 시복식이 열린 7월 5일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대축일(현재는 기념일)로 지내온 만큼 첫 시복의 그 의미가 크다”며 “우리 노력으로 순교자들이 드높이 현양되는 역사와 가치를 계속 되새기고 공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희년을 맞아 성지순례를 할 때 교회사를 관통하는 순교자들에 관해 더욱 깊이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런 의미에서 교회사의 대중화가 이뤄지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