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 기다림과 치유

(가톨릭신문)

오래전 대학에서 강의하던 어느 봄날, 나는 뜻밖의 고통을 겪었다.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교수가 목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치명적인 시련이었다. 진료 결과 성대에 작은 용종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여름 방학을 맞아 수술을 예약하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학기를 마쳤다.


그러나 수술 전날 마지막 검진에서 의사는 용종이 너무 작아져 수술 여부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평안해졌고, “그렇다면 수술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종양이 생기면 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병원을 나왔다.


그 후로 ‘폴립’은 다시 생기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 일을 작은 기적이라 부른다.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이사 41,10)


만일 성급히 수술받았다면 불필요한 상처와 후유증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기다림 속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 28) 우리의 조급함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길이, 하느님의 시간 안에서는 은총의 길로 드러난다.


세상은 빠른 해결을 추구한다. 병원은 수술 건수를 자랑하고, 우리는 곧바로 결과를 원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언제나 인내와 기다림을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신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이사 40,31) 때로는 기다림이 치유가 되고, 침묵이 응답이 되며, 멈춤이 은총이 된다.


나는 내 삶을 돌아보며 묻는다. 혹시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여 더 큰 상처를 만들지 않았는가?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내 뜻대로 밀어붙이지 않았는가? 신앙인은 침착함과 인내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배워야 한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리 4, 6)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손길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목소리를 되찾은 사건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신뢰의 선물이었다.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시편 46,11)라는 말씀이 내 마음 깊이 새겨졌다. 주님은 지금도 나를 이끄시며, 기다림 속에서 더 큰 기적을 준비하고 계신다. 절절한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주님, 제 조급한 마음을 다스려 주소서. 당신의 시간 안에서 기다릴 수 있는 인내와 평화를 주소서. 고통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도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소서. 제 삶이 성급한 선택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따라 열매 맺게 하소서. 작은 기적을 통해 큰 사랑을 배우게 하시고, 언제나 감사와 신뢰 안에 머물게 하소서. 아멘.”



글 _ 이용훈 마티아 주교(수원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