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향숙 평화칼럼] 미션과 편견

(가톨릭평화신문)

생활성서사는 지난해만도 브뤼기에르 주교 관련 책을 세 권 펴냈다. 사람들은 다소 의아해했다. 아무리 ‘하느님의 종’이고 서울대교구에서 시복을 추진 중이라고는 하나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분 관련 책을 몇 개월 사이에 세 권이나 펴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살기」(이하 「~살기」) 원고 작성이라는 미션이 내게 왔을 때 “이 미션은 패스~”라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그분의 전기나 평전을 내는 건 알림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런 책들보다 더 내면화하는 「~살기」는 책 성격상 지나쳐 보였다. 「~살기」는 그분의 삶을 반년 동안 매주 읽고 명상하고, 그분 삶을 성경과 연결해 묵상하며, 그 묵상에 비추어 오늘날 자기 상황에서 삶을 되돌아보고 기도와 실천으로까지 나아가도록 안내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따지는 편인 내게 그 일은 아무래도 낭비 같았다.

미션에 착수하기 전, 이런 생각으로 거부할 핑계가 계속 나의 뇌리를 맴돌았다. 5년여 전 펴냈던 같은 성격의 「성 김대건 신부 바로 살기」와는 관심도에서 비교가 안 됐다. 성 김대건 신부님의 영성은 늘 우리 모두가 알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반면, 브뤼기에르 주교의 경우에는 ‘뭐, 그렇게까지야’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브뤼기에르 소 주교님이 좀처럼 내 관심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이제 와 생각하니, 내가 그분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조선대목구 초대 감목, 조선 입국 실패.’ 이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땅에 발도 딛지 않았던 분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직접 쓰신 서간과 일기, 한수산 선생님의 「내가 떠난 새벽길」 등을 읽으면서 목자 없는 양의 처지였던 당시 조선 교우들을 그분이 얼마나 걱정하고 사랑했는지, 그래서 온갖 어려움을 다 견디시며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우리에게 오시다가 결국 조선 입국을 눈앞에 두고 주님 품으로 돌아가신 안타까운 사연 등을 알아가게 되었다.

그분이 견디신 어려움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다. 박해 시대였던 당시의 조선 입국은 곧 목숨을 내놓는 일이었고, 이미 맡은 전교 지역만도 버거우니 조선 선교는 아예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회원들의 반대와 무관심, 심지어 조선 교우들로부터도 소 주교님의 입국을 원치 않는다는 편지를 받게 된 외사랑의 아픔까지, 그분의 애끓는 여정은 결코 여느 순교보다 덜하지 않았다.

그분 삶이 나의 선입견과 얼마나 다른가. 문득 소설과 영화의 동명 제목인 「오만과 편견」이 내 마음을 스쳤다. 주인공 다아시는 첫 만남에서 엘리자베스를 무시하는 듯한 ‘오만’한 태도를 보였고, 엘리자베스는 그가 오만하다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오해와 갈등을 겪으며 차츰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그래서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하고,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라는 그 유명한 경구가 태어났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겸허하셨으나 나는 그분에 대한 편견으로 애써 그분을 외면했다. 만일 「~살기」 작성이라는 미션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 그 편견에 갇혀 있을 것 같다. 힘겨웠지만 그 미션으로 인해 나는 마침내 그분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전구를 청하게 되었다. 모든 이가 편견 없이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과 영성을 살아가는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