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앙] (35)당신의 향기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가톨릭평화신문)
올해도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몰라 늘 우산을 챙겨야 하는 장마철이 왔다. 잔뜩 흐린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눈으로 비를 보고, 귀로 빗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가끔은 눈과 귀가 아닌 코에 들어오는 냄새로 비를 느낀다. 풀냄새 같기도 하고 흙냄새 같기도 한 그것은 바로 비 냄새다. 비가 내릴 때 나는 이 냄새는 빗물 자체에서 나는 냄새는 아니다. 흙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기름 성분이 빗방울과 함께 에어로졸(공기 중에 떠 있는 작은 물방울) 형태로 공기 중에 퍼지는데, 여기에는 토양 속 세균이 만들어낸 화학물질이 들어있어 흙냄새와 비슷한 특유의 비 냄새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비 냄새를 과학자들은 페트리코(petrichor)라 부른다.
사람은 비를 눈(시각)·귀(청각)·코(후각) 등 여러 감각 기관으로 느낄 수 있음에도 과거에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보다 천대받았다. 플라톤은 눈과 귀로 이데아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았기에 후각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으며 감각을 중시했던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사람에게서 후각은 다른 감각보다 못하다고 했다. 임마누엘 칸트도 후각을 ‘가장 천박하고 없어도 되는 감각’이라 여길 정도로 후각은 과소평가되어왔다.
1991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리처드 액설과 린다 벅은 1000여 개의 유전자로 구성된 후각 관련 유전자군을 발견했는데, 이를 통해 인간의 후각 인지 메커니즘이 밝혀지게 되었고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난해했던 후각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또 신경의학과 뇌과학 분야의 과학자들은 후각이 다른 감각과 다르게 자극 정보를 분석적으로만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받아들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후각 정보는 대뇌의 변연계로 보내지는데 변연계는 후각뿐만 아니라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을 포함한다. 따라서 특정 냄새가 어떤 사람이나 사건과 연결되어 있으면 그 냄새를 다시 맡게 되었을 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감정이 되살아난다. 말하자면 후각은 기억의 열쇠인 셈이다. 이러한 현상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하는데,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 향을 맡으며 과거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서 유래했다.
향기는 꽃이나 음식뿐만 아니라 사람에게서도 나온다. 코의 후각 세포를 통해 뇌를 자극하는 화학물질로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언행과 표정, 인품으로 우리 마음에 기억되는 삶의 향기다. 나에게는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 그러한 향기로 기억되는 분들이다. 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깊고 울림이 있는 향기는 나에게 오래오래 기억되고 있다. 나도 그분들처럼 향기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과연 지금 나의 향기는, 당신의 향기는 무엇인가? 자기중심적 세계관과 세속적 탐욕,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언행·위선적 모습으로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악취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생각만 해도 미소가 나오고 그리워지는 인간미 넘치는 향기를 내고 있는가? 나는 타인에게 어떤 향기로 기억될지 이제 스스로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2코린 2,15)
전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