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6)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소명 ‘보호와 돌봄’

(가톨릭신문)

인간의 문명은 갈수록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 속도에 비해 인간의 본질은 참으로 심오하고 경이롭다. 인간이 그 속도에 맞추어 따라간다면 자칫 고귀한 본질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성경에서 하느님을 감동시킨 인물 중 한 사람이 솔로몬이다. 하느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1열왕 3,5) 라고 물었을 때 그는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1열왕 3,9) 하고 청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선택에 감동하시며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1열왕 3,12)과 함께 청하지 않은 부와 명예도 주셨다. 하느님께서 지금 그리스도인에게 물으신다면 무엇을 청해야 할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3년 교황 즉위미사 강론에서 성 요셉처럼 예수님을 보호하고, 모든 피조물을 보호하고, 모든 사람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사명에 우리 모두를 초대하셨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께 청할 것이 바로 보호와 돌봄의 능력이 아닐까? 한처음에 인간은 동산을 돌보는 사명을 받았다.(창세 2,15 참조) 그러므로 “양들을 돌보고”(요한 21,15-17) “깨어서 하느님 집안 식솔들을 돌보는”(마태 24,45) 것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소명이다.


여섯 살 어린이들이 현장학습을 하던 날. 한 아이가 손을 씻고 나서 핸드 드라이기에 손을 말리려고 하는 순간, 옆에 있던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야! 북극곰,” 그러자 손을 말리려던 아이가 미소를 지으며 “아, 그래 북극곰을 잊었네”라며 손을 내렸고,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우리가 지구를 지켜야 해”, “에너지를 아끼자” 하면서 물 묻은 손을 털고 손끝을 자신들의 옷에 살짝 대면서 물기를 닦았다.


‘생태영성우정교육’을 통하여 아이들은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생명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기에 서로를 일깨우면서 무심코 하던 행동을 즉시 수정할 수 있었다.


맑은 물 한 방울이 그냥 흘러가지 않도록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 종잇조각 하나, 휴지 한 장은 쓰고 버릴 그 무엇이 아니라 그 안에 나무의 이야기가 있기에 귀하게 대하면서 나무를 보호하는 것, 전열기구 사용을 자제하는 것, 일회용과는 아름답게 이별하는 것, 생명의 울부짖음을 듣고 편리함보다 불편함을 기꺼이 선택하고 소비를 줄이는 것,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긴밀하게 연대하고 나누는 것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우주 가족을 보호하고 돌보는 소명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기에 하느님의 모든 가족이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회복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 당장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글 _ 이미영 젬마 수녀(살레시오 수녀회, 서울나자렛공동체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