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들에게 ‘천사’는 어떤 의미일까. 「가톨릭대사전」은 “천사는 하느님과 비슷한 존재로서 인간을 보호하는 힘으로, 하느님과 인간들 사이의 중개자로 봉사한다”고 설명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천사를 “지성과 의지를 가진 순수한 영적 존재로서, 죽지 않는 인격적 피조물”(330항)로 가르치며,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고 인간을 돕는 이들로 제시한다. 성경 안에서는 이름과 역할이 명확히 드러난 세 천사를 만날 수 있다.
히브리어로 ‘하느님의 사람·영웅·힘’이라는 ‘가브리엘’(Gabriel, 다니 8,16; 9,21; 루카 1,26 참조),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라는 의미의 ‘미카엘’(Michael, 다니 10,13.21; 12,1; 묵시 12,7 참조), ‘하느님이 고쳐 주셨다’는 뜻의 ‘라파엘’(Rafael, 토비 12,15 참조)이다. 이 대천사들의 사명은 오늘날 ‘정의’와 ‘말씀’, ‘치유’라는 흐름으로 연결된다.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맞아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대천사들이 맡은 역할을 되새겨본다.
‘미카엘’, 하느님 정의와 질서의 수호자
9월 29일 대천사 축일에 가장 먼저 기억되는 이는 성 미카엘이다. 다니엘서는 “그때에 네 백성의 보호자 미카엘 대제후 천사가 나서리라”(다니 12,1)고 전하고, 요한 묵시록은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웠다”(묵시 12,7)고 증언한다. 유다서 역시 미카엘 대천사가 ‘모세의 주검을 놓고 악마와 다투며 논쟁’ 하는 장면을 언급한다.
교회는 이처럼 미카엘을 악과 불의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수호자로 기념해 왔다. 이름에 담긴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라는 선언은, ‘그 누구도 하느님과 같지 않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미카엘 대천사의 싸움은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라, 악에 맞서 하느님의 정의와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의 라틴어 표어 “Quis ut Deus?”는 미카엘의 성상과 방패, 기치에 자주 새겨진다. 칼이나 창, 또 저울(심판·분별), 악을 밟는 이미지는 ‘하느님만이 기준’이라는 뜻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처럼 미카엘 대천사의 면모는 세상의 악과 불의를 거스르는 하느님의 정의를 일깨운다.
말씀의 전령 ‘가브리엘’, 예수 그리스도 탄생 알려
성 가브리엘은 성모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린 ‘수태고지’의 천사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루카 1,26-38 참조) 그는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령’의 표징으로 자리해 왔다. 구원의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했을 뿐 아니라, 그 소식을 받아들여 새로운 역사를 열도록 초대했다.
구약의 다니엘서에서 가브리엘은 환시의 의미를 설명하고 하느님의 계획을 보여주었다.(다니 8,16; 9,21 참조) 신약에서는 즈카르야에게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마리아에게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며(루카 1장 참조)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열었다. 그는 미술 작품 속에서 보통 백합꽃(순결), 두루마리(말씀) 등으로 그려지며, 하느님 뜻을 전하는 전령의 면모를 묘사한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말씀의 힘’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그의 역할은 말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구원의 힘이 될 수 있음을 엿보게 한다.
치유와 동행의 천사 ‘라파엘’, 고통받는 이들 동반하며 치유
성 라파엘은 병자와 여행자,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자로 공경 받는다. 성화 속에서 그는 토비야의 손을 잡고 동반하는 장면으로 자주 묘사되며, 치유와 보호의 상징으로 전해진다.
라파엘 대천사는 구약의 토빗서에서만 등장한다. 토비야의 여행길에 동행하며 병을 고치고, 마귀의 굴레에서 사라를 해방하며, 눈먼 토빗의 시력을 회복시킨다. 라파엘은 자신을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토빗 12,15)라고 밝히며, 하느님 앞에서 사람들의 기도를 봉헌하는 사명을 맡는다.
라파엘의 상징물은 물고기, 지팡이, 약병이다. 물고기는 아버지의 눈을 고치기 위해 토비야가 잡은 물고기에서 비롯됐고, 지팡이는 여행의 동반자, 약병은 치유의 표지를 나타낸다. 그의 형상은 곁에서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 걷고, 상처를 싸매주는 하느님의 은총을 환기한다. 오늘의 신앙인들에게 라파엘 대천사는 고통받는 이들의 길을 동반하며, 아픔을 싸매주는 은총의 표상으로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