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때마다 제1독서 뒤에 울려 퍼지는 화답송. 익숙하지만 금세 스쳐 지나가던 그 구절들이 한 권의 묵상집을 통해 다시 ‘오늘의 나’에게 말을 건넨다.
「시편에 설레다」의 저자 임미숙 수녀(엘렉타·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 수녀원)는 시편을 “성경에서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가장 신학적인 책”이라 정의한다.
그는 찬양과 탄원, 감사와 신뢰가 교차하는 시편의 언어 속에서 “상황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하느님 안에서 일어나는 반전”을 본다고 강조한다. 곤궁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붙드는 인간의 모습, 응답 없는 침묵 앞에서도 등을 돌리지 않고 품으로 다시 뛰어드는 신앙의 결단이 바로 시편의 힘이라는 것이다.
"시편에는 이스라엘의 오랜 구원 역사와 기억이 배어 있습니다. 찬양·탄원·감사·고백·신뢰 같은 인간의 모든 정서와 상황이 담겨 있지요.”
임 수녀의 설명처럼 시편은 단순한 개인의 기도집이 아니다.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과 계약의 기억, 메시아에 대한 희망이 켜켜이 쌓인 공동체적 신앙의 아카이브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시편 전공으로 구약성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수많은 강의와 피정 지도 현장에서 신자들을 만나고 있는 그는 “시편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시편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신자들에게 알리고자 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시편이 지닌 ‘생활 밀착형’ 기도를 쉽게 풀어 신자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학문으로 배운 것을 어떻게 편안하게 그리고 그 의미를 고스란히 보여드릴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수도회 입회 전부터 성경 통독을 하다가 시편에 마음을 붙잡혔다”고 회상한 그는 “시편을 처음 읽었을 때 너무 솔직해서 놀랐고, 너무 아름다워서 당황했다”고 털어놓는다. 그의 고백처럼, 책에는 시편에 대한 열정과 탄탄한 지식이 녹아 있다. 주요 시편 본문을 친절히 해설하고, 그와 겹친 체험과 기도의 순간을 조용히 들려주어 머리와 가슴이 어우러진 시편 에세이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시편 가운데에서도 개인적으로 탄원시편을 좋아한다”고 말한 임 수녀는 “울부짖고 하소연하면서도 하느님과의 끈을 놓지 않고 모든 것을 하느님과 연관 지어 풀어내려는 모습, 절망 속에서 희망을 파종하는 모습에 마음이 간다”고 했다.
그는 이 힘의 근원을 ‘기억’에서 찾는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기억을 눈앞에 두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맡겼습니다. 우리도 각자의 작은 ‘탈출기’를 기억하면 응답 없는 시간에도 기다릴 내공이 생깁니다.”
책 속 문장도 이를 받쳐 준다. “시편을 노래한다는 것은 기억의 힘을 키우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229쪽)
임 수녀가 제안하는 ‘일상 속 시편’의 길은 간단하다. 150편의 시편을 하루 한 편씩 읽거나 기도로 바치고 필사하거나, 시편 성가를 부르고 짤막한 구절을 암송하는 방법이다.
“이 책이 시편에 설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결국 ‘시편이 나의 기도’가 되는 체험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낯선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함께하고, 우리 삶이 녹아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 같은 말씀이 되면 좋겠습니다.”
임 수녀는 의식이 희미해진 가운데 시편 23편을 마지막까지 읊조리던 한 수녀와의 인상 깊은 일화를 소개하며, “저 역시 시편으로 생애 마지막 기도, 혹은 생애 마지막 말을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지녀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