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동굴 속 위로의 성모 성지’ 마리아슈타인 베네딕도회 수도원

(가톨릭평화신문)
암벽 위의 마리아슈타인 수도원. 1648년 순례 사목을 위해 세운 베네딕도회 수도원이다. 프랑스 혁명 여파로 세속화되어 한동안 학교와 창고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순례 사목은 계속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몫이었다. 현재 6년 임기의 루트비히 아빠스를 포함해 12명의 수도자가 순례자들을 보살피고 있다.
마리아슈타인 수도원 성당.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의 성당으로 수도원 건축 시 기존의 소성당과 순례 소성당을 증축하는 과정에서 지었다. 1655년에 봉헌됐으며, 1941년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수도원 마당을 끼고 수도원 레스토랑과 성물방·순례자 사무실이 있으며, 맞은 편에 순례자 호텔이 있다. 출처=셔터스톡

스위스·프랑스·독일 3국 접경에 있는 바젤을 떠나 라이멘탈의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면 순례자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옵니다. “우리는 무리 지어 언덕 위로 올라갑니다. 구름과 바람이 뒤따라오네. 하느님 당신을 찾으려 하나이다. 키리에 엘레이스.” 오늘 순례지는 이 노래의 목적지인 마리아슈타인 수도원입니다. 17세기 중반,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25㎞ 떨어진 바인빌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수도 생활의 부흥을 꿈꾸며 새로 마련한 보금자리지요.

바인빌 수도원은 1110년 설립된 유서 깊은 수도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도원 관리를 두고 세속영주 간의 분쟁에 계속 휩쓸리면서 영적·재정적으로 쇠퇴했고, 외딴 산악 지대라 후진 양성도 힘들었지요. 아인지델른 수도원·라이헤나우 수도원이 도움을 주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1648년 30년 전쟁이 끝나자 수도자들은 바젤과 멀지 않은 이곳으로 완전히 이전하기로 합니다. 마리아슈타인을 새로운 출발 장소로 삼은 결정적 이유는 순례자들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슈타인(Mariastein)’이란 이름에서 이미 아셨겠지만, 이곳은 암벽에 자리한 성모 성지로 스위스에서 아인지델른 다음으로 중요한 순례지입니다.
성모 칠고 소성당. 수도원에서 가장 오래된 순례 소성당으로 15세기 말 절벽 가장자리에 세웠다. 아마도 순례자들이 동굴로 들어가기 힘들어서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수도원을 건립하면서 건물 안으로 통합되었다.

암벽에서 일어난 은총의 기적

14세기 말 어느 가을이었습니다. 어린 목동과 어머니가 지금의 수도원이 있는 바위 위 들판에서 소를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한낮의 더위를 피해 동굴에서 잠시 눈을 붙인 사이, 아이는 놀다가 절벽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잠에서 깬 어머니는 아이를 찾으며 골짜기 아래까지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아들이 무사히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아이는 어떤 여인이 나타나 구해줬다고 하지요. 사람들은 그 여인이 성모 마리아라고 확신하고는, 동굴에 성모상을 모셨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1442년의 기록이지만, 순례는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성모님의 도움을 청한 이들에게 기적이 일어나면서 순례 행렬이 이어집니다. 처음에 바젤 주교는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자를 파견해 순례자를 보살피도록 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1638년부터 바인빌의 베네딕도회 공동체에 순례 사목을 맡겼습니다. 이를 계기로 수도원이 마리아슈타인으로 옮기게 된 겁니다.

베네딕도회가 순례 사목을 맡으면서 마리아슈타인 마을은 안정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당시 정부와 가톨릭 영주들은 수도원에 토지사용권을 주는 등 수도원 이전을 적극 후원했고, 인근 본당과 신심 단체들도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덕분에 바로 수도원 공사에 착수해 1650년대 후반까지 지금의 수도원을 비롯해 순례자를 위한 시설도 확충할 수 있었습니다. 수도원은 프랑스 혁명과 스위스 수도원 폐쇄령 등의 격변기를 겪으면서 50년 가까이 문을 닫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에도 성모님을 찾는 순례자들을 보살피는 일은 계속 베네딕도회 수도자의 몫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수도원의 시간 기도와 성 우르술라 성유물을 모신 보조 제대. 가대석 너머로 보이는 성모승천을 주제로 한 주 제대는 17세기 말 바로크 양식의 걸작으로 프랑스 루이 14세가 기증했다. 출처=마리아슈타인 수도원

바젤에서 트램 타고 가는 순례길

바젤 시내에서 출발한 트램은 30분이면 플뤼 마을에 도착합니다. 마을에서 절벽을 돌아 수도원 앞까지 가는 노선버스가 있지만, 날씨가 좋다면 옛 순례자들이 행렬지어 갔던 것처럼 마을과 숲을 지나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권합니다. 수백 년간 순례자들이 그랬듯이 대자연 속에서 하느님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하얀 성당과 수도원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아침이면 천국의 도성이 다가오는 듯합니다.

마리아슈타인 마을은 아랫동네보다 아담합니다. 넓은 수도원 앞마당이 한적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축일이나 성모 마리아 축일에는 단체 순례자들로 조금 떨어진 넓은 주차장까지 꽉 찹니다. 바로크 양식의 수도원 성당은 5개 아케이드로 나뉜 삼랑 구조입니다. 성모 승천을 주제로 한 주 제대와 성 베네딕토와 성 스콜라스티카·성모님의 삶을 그린 천장 프레스코화와 스투코가 이곳이 성모님의 성지이자 베네딕도회 수도원임을 드러냅니다.

이곳에는 바젤의 수호성인 성 판탈루스·성 우르술라의 성유물도 모셔져 있습니다. 바젤이 종교개혁 이후 신교 중심 도시가 되면서 바젤 대성당에 소장되어 있던 성유물은 한동안 제의실 벽장 속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833년 바젤주가 바젤시와 외곽 지역으로 분리되면서, 일부 성유물을 가톨릭의 정신적 지주였던 마리아슈타인 수도원으로 옮겨 모시게 된 겁니다.
동굴 속 은총 소성당의 주 제대와 ‘미소 짓는 마돈나’. 60cm 크기의 목각상으로 성모님과 아기 예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져 있다. 기원은 불확실하나 조각상 양식으로 보아 수도원 건립 전에 제작해 모신 것으로 추정된다. 성모자상의 예복은 전례력에 따라 교체된다.
순례자들이 봉헌한 감사판(위)과 동굴 소성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아래).

위로와 힘을 얻는 동굴 속 소성당

오늘 순례의 중심이자 목적지인 은총 소성당은 수도원 아래 동굴에 있습니다. 긴 회랑을 지나 59개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커다란 동굴에 들어섭니다. 스물대여섯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공간으로 천장과 벽이 바위의 거친 면이 그대로 드러난 천연동굴 소성당이죠. 원래는 훨씬 더 좁은 공간이었으나 수백 년에 걸쳐 확장되었습니다.

입구 정면 바위 표면에 제대가 있고, 그 옆 돌 속에 화려한 의복에 왕관을 쓴 성모자상이 있습니다. 이 성모상의 정식 명칭은 ‘위로의 어머니’지만, 순례자들은 ‘미소 짓는 마돈나’라고 부릅니다. 후기 고딕 양식의 여느 성모상과 달리 성모 마리아의 입가와 눈가의 미묘한 곡선에서 따뜻함과 친근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을 쳐다보면 마치 다정한 미소로 우리 사정을 다 들어주시며 토닥토닥 위로해 주시는 듯합니다.

동굴 밖 세상에 나오니 눈이 부십니다. 순례자 그룹에서 노래 마지막 구절이 들려 옵니다. “우리는 뛰어서 세상의 심장부로 다가갑니다. 그 심장은 바위 속에서 뛰며, 세상을 치유하고 지켜줍니다. 하느님, 키리에 엘레이스.” 맞습니다, 하느님의 사랑만이 우리 세상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자비의 성모님의 전구로 일상 속에서 다시 힘을 내어 봅니다.

 

<순례 팁>

※ 스위스 바젤 SBB 트램 정거장에서 10번(Rodersdorf/Flüh행, 35분) - Flüh 버스 정류장에서 69번(Metzerlen행, 5분)을 타거나 도보로 30분

※ 수도원 전례: 주일 및 대축일 09:00·11:00, 평일 9:00 / 6:30·12:00 ·15:00·18:00·20:00 시간 전례가 있다. 2025년 매월 첫 수요일 순례자를 위한 특별 전례가 있다.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알찬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 (분도출판사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