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에서 되살아나는 복음의 증거자들…「성인전 - 미술관에서 삶의 길을 찾다」

(가톨릭신문)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리기를 자청한 베드로의 굳은 의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냉철한 지성, 세상과 단절된 동굴 속에서도 고요한 강인함을 잃지 않는 안토니오 성인의 모습.


조토의 〈성 베드로와 바오로의 순교〉, 리포 멤미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승리〉, 다비트 테니르스의 〈성 안토니오 아빠스의 유혹〉 앞에 서면, 굳이 설명이 없어도 그 내면의 언어가 고스란히 전해온다. 수백 년 전 화가들이 붓으로 포착한 것은 성인의 외양이 아니라, 그 내면에서 타오르던 은총과 신앙의 깊이였다.


「성인전」은 그 언어를 읽어내는 책이다. ‘미술관에서 삶의 길을 찾다’를 부제로 한 책은 장대한 서양미술사 속에 숨겨진 성인들의 이야기를 예술가들의 조형적 감각과 신앙의 역사로 함께 펼쳐 보인다.


무엇보다 성화를 단순한 종교적 도상으로 읽지 않는다. 저자 윤인복 교수(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는 “이미지란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잠재한 그리움을 자극하여 결국 사랑과 공경으로 이끄는 창(窓)이 된다”고 밝힌다. 



성화를 바라보는 행위 자체가 색채와 형태를 감상하는 미적 행위를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를 향해 마음을 여는 영적 행위라는 풀이다. 그림 앞에 선 관람자가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신앙의 응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순교와 증거’, ‘기도와 묵상’, ‘신비와 은총’, ‘회개와 봉헌’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베드로와 바오로부터 안드레아, 마태오, 토마스, 마르코에 이르는 복음의 증인들로 문을 열고, 이집트의 안토니오, 파도바의 안토니오, 모니카, 아우구스티노, 베네딕토 등 기도와 묵상의 성인들이 이어진다. 


‘신비와 은총’ 편에서는 성모 마리아, 요셉, 즈카르야, 엘리사벳, 미카엘과 라파엘, 가브리엘 대천사 등 구원의 역사를 함께 살아낸 이들을 조명하며, 마지막 ‘회개와 봉헌’ 편은 아가타와 루치아, 아녜스 등 헌신과 회개의 삶을 살아낸 성인들로 마무리된다. 시대와 문화를 달리하는 수십 명의 성인들이 각기 다른 명화 속에서 되살아나는 구성이다.


소개된 그림들 속에는 사도 요한의 비수 같은 날카로운 통찰, 아우구스티노의 지성적 광휘, 도미니코의 생동적인 미소, 프란치스코의 섬세한 감수성, 아녜스의 순수한 눈빛, 바르바라의 귀족적인 우아함 등 성인들의 개성과 기질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특징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들 모두에게서 동일한 신앙의 빛을 찾을 수 있다. 그 빛이야말로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건네고자 하는 핵심이다.


가톨릭교회 역사에서 성인들은 단순한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각 시대 안에서 복음이 살아 움직였음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들이다. 그 신앙의 흐름이 시대를 넘어 면면히 계승되어 온 것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에라스무스의 「콜로키움」을 인용, “성인들을 공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본받는 것”이라며 “그림을 읽는 눈이 ‘빛의 기도’로 전환되고,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으로 이어져, 명화 속 성인들과 함께 우리 자신도 ‘거룩한 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책장을 넘기며 미술관이 단순한 감상의 공간을 넘어 신앙을 성찰하는 자리가 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