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떠난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비움’을 뒤좇다

(가톨릭평화신문)
라테라노 대성전 맞은편 프란치스코 성상.


보편 교회는 올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을 맞아 ‘성 프란치스코의 특별 희년’을 보내고 있다. 아시시는 지난 2~3월 사순 시기 한 달 동안 성인 선종 후 처음 일반에 성인 유해를 공개해 이 시기에만 50만 명에 이르는 순례자가 다녀갔다. 수많은 이가 ‘평화의 성인’ 프란치스코가 남긴 영성을 기억하며 오늘날 여전히 우리 인류에 절실한 평화·가난과 연대·창조질서와 생태의 가치를 기도 중에 되새겼다. 희년을 맞아 이탈리아 로마와 아시시 현지를 순례하고 온 서영섭(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의 순례기를 싣는다.

기억은 단순히 떠오름이 아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 안에서 미래를 바라보며 영원히 드러내는 현존, 그것이 교회가 말하는 ‘기억’이다. 다시 말해 기억은 지나간 시간의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나간 시간을 정화하고,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는 오늘을 영원히 살아가는 미래라고 하겠다. 과거·현재·미래의 공통분모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 영원이다.

이러한 영원은 오로지 하느님에게만 속한 시간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성을 사용하여 기억할 수 있는 영원의 은총을 주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이 말씀을 새기며 여전히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 기억을 지금 우리의 삶 안에서 온전히 구현한 이가 바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다. 그가 ‘제2의 그리스도’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그리스도를 완전히 재현하며 복음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온 성인이다. 이러한 성인의 삶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큰 감화를 주어, 시공간을 초월해 여전히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신앙의 좌표가 되고 있다.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 전경.

자기 비움과 겸손의 극치

혹자는 성 프란치스코의 이러한 영성의 삶이 독창성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진정 독창성이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이는 그가 그만큼 복음에 충실했다는 방증이다. 어쩌면 특별할 것 없는 단순함이 바로 특별하고 독창적인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이렇듯 오로지 복음만을 위해 살아온 단순성이야말로 성 프란치스코의 특별하고도 고유한 영성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단순성은 자기 비움과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오신 강생과 육화의 신비를 오롯이 삶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전면에 내세운 성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강생의 신비는, 역설적으로 위에서 아래로가 아닌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상승의 신비였다. 그는 아버지 앞에서 자신을 두르고 있던 외적인 옷을 모두 벗어버렸다. 이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부끄러워했던 아담과 달리, 세상 앞에서 전혀 부끄럽지 않은 비움의 알몸이었다.

성 프란치스코에게 복음의 삶을 위한 비움·가난·단순·겸손은 충만한 영성을 살아가기 위한 생활양식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의 수도생활에서 기억할 만한 중요한 사건들이 800주년을 맞이했다. 곧 1223년 수도규칙 인준(인준받은 회칙)과 그레초의 성탄 구유 예식, 1224년 라베르나 산에서 그리스도의 오상을 받음, 1225년 태양 형제의 노래(피조물의 노래) 작성이다. 그리고 올해는 1226년 성 프란치스코가 선종한 지 8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작은 배낭에 담긴 프란치스칸 정신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아시시 수도원(Sacro Convento) 대성전에 모셔진 성 프란치스코의 유해가 선종 800주년을 맞아 지난 2월 21일부터 3월 22일까지 한 달간 800년 만에 처음 일반에 공개 및 현시되어 순례자들의 참배가 가능했다. 나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한국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관구 소속 수도자이지만 한 번도 아시시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관구장 수사님의 배려로 매우 의미 있는 ‘성 프란치스코 유해 현시’ 기간에 맞춰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비록 육신은 썩어 사라져 뼈만 남았을지라도, 그저 흔하디흔한 성지순례가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의 유해를 직접 볼 수 있는 순례이기에 몹시 설레었다. 나는 3월 8~16일 7박 9일 일정으로 로마와 아시시를 다녀왔다. 실은 이탈리아로 출국하기 전부터 내적 갈등이 있었다. 다름 아닌 짐 꾸리기였다. 여유 있게 짐을 챙길 수 있도록 캐리어를 가져갈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답게 프란치스칸의 생활양식을 따르기로 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9-10) 하신 말씀에 따라, 조그마한 배낭 하나만 메고 떠나는 호기를 부렸다.

여하튼 설렘을 안고 도착한 로마는 과연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앞서 말한 대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영원한 장소’였다. 이 영원한 장소에서 짧은 일정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첫걸음으로, 우선 기억을 현재로 구현하고자 성 프란치스코가 회칙을 인준받기 위해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을 찾아갔던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을 방문했다. 성전 건너편에 있는 성인의 성상을 바라보니, 프란치스칸 여정의 출발점을 마주한 듯 마음이 벅차올랐다. 회개하고자 했던 당시의 열정이 오늘날 우리 교회에 끊임없는 쇄신과 변화, 발전이라는 과제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외치는 듯했다. 마치 광야에서 요한 세례자가 “회개하시오”라고 외쳤던 것처럼 성 프란치스코의 사자후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 내부.


사실 성 프란치스코의 유해 참배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정이 있었다. 바로 작년 4월 21일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뵙는 것이었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을 텐데, 그 무게를 감당하며 프란치스칸 못지않게 프란치스칸다운 삶을 사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뵙고자 산타 마리아 마조레(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모셔진 묘소를 참배하였다. 묘소는 예상대로 그 앞에 참배객이 없었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소박했으며 매우 단순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프란치스칸보다 더 프란치스칸답게 살아가며 사도적 권고나 회칙을 통해 늘 성 프란치스코의 영감을 일깨워주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며 로마에서 첫째 날과 둘째 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성 프란치스코 유해(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총본부 제공).


자기 비움으로 얻은 영원한 평화

셋째 날, 드디어 아시시로 출발했다. 늘 머릿속에 그리며 상상했던 곳, ‘텅 빈 충만’의 도시 아시시. 그곳에서 복음으로 교회 쇄신과 변화를 싹 틔웠던 성 프란치스코를 만나러 갔다. 그렇게 설렘과 동경으로 마주한 아시시의 풍경은 참으로 평화로웠고, 이미 수많은 이가 성 프란치스코를 만나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앞마당에 세워진 프란치스코 성상.


아시시 역시 로마에서 느꼈던 그대로 800년 전 과거와 현재, 미래가 현존하는 영원하고 거룩한 곳이었다. 마치 성 프란치스코라는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듯, 고요하면서도 열정 넘치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아시시 대성전 앞마당에는 말을 탄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성 프란치스코의 성상이 있다. 마치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군 채 세상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한 모습이 단순히 기사가 되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던 패배자의 모습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오직 ‘가난한 하느님’만으로도 삶이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지극히 겸손한 이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성 프란치스코는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철저히 하느님다운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육화의 신비가 삶으로 구현된 모습일 것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아무리 성인이지만 뼈를 바라보는 게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나 역시 이 궁금함을 마음속에 품고 아시시로 갔다. 그리고 누군가의 말대로 뼈만 바라보고 왔다. 하지만 성 프란치스코의 유해로 남은 그 앙상한 뼈를 바라보며, 뼈가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는 방금 파스카 성삼일 중에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주례를 마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의 앙상한 뼈는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철저히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사랑을 일깨워주었다. 놀랍게도 나는 유해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1요한 4,18)라는 말씀처럼 말이다.

나 역시 두려움이 없도록 사랑을 해야겠다. 두려움 없이 하느님을 사랑했던 성 프란치스코의 삶이 우리에게 영원한 것처럼,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성 프란치스코의 삶을 합치면 곧 “영원히, 함께”가 된다. “영원히, 함께”는 우리 수도회 명칭인 ‘꼰벤뚜알(Conventual)’ 영성이라 할 수 있다. 꼰벤뚜알은 단순히 공동체라는 의미만을 지니고 있지 않다. 꼰벤뚜알은 시대의 징표를 복음적으로 바라보며, 세상 안에서 쇄신과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는 삶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꼰벤뚜알 영성이 아닐까 싶다. 세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속에 물들지 않았던 성 프란치스코의 고결한 삶을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는 복음적인 삶만이 교회와 세상에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 그런 희망을 살아가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자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며?.


 
서영섭 신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