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부처님 오신 날에 떠올린 ‘신앙고백’

(가톨릭평화신문)
제작: 제미나이


오색찬란한 등불이 광화문 사거리를 밝히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24일)입니다. 거리마다 연등이 줄지어 걸리고, 형형색색의 빛이 도심을 물들이는 이맘때가 되면 유독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2018년 9월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울 종로 지역을 담당하는 취재기자로 조계사를 출입하고 있었습니다. 치열한 취재 경쟁 속에 원행 스님이 총무원장으로 선출됐고, 기자회견이 끝난 뒤 스님은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 명함의 이름을 살짝 가린 채 건넸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스님은 명함을 받자마자 이름부터 확인하셨습니다.

“유은총이?. 이거 아랫동네 사람이네. 명동(성당) 아니면 영락(교회)인데?.”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출입처를 잃는 건 아닐까.’ 스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제 입이 먼저 열렸습니다.

“스님, 저도 부처님 제자입니다.” 속으로는 ‘하느님의 자녀이기도 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재밌네, 유 기자. 자주 보입시다.”

지금 돌아보면 웃음 짓게 되는 기억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리에서 가톨릭 신자임을 당당히 밝히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름은 ‘은총’이고, 세례명은 ‘프란치스코’입니다. 하느님께 받은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렸던 그 순간이 지금도 마음에 걸립니다. 신앙이란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임을,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스님, 저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비와 절대 멀지 않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불교와 가톨릭은 생각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함께해왔습니다. 불교는 신라 시대 이차돈의 희생을 통해 이 땅에 뿌리를 내렸고, 가톨릭 역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의 피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목숨을 걸고 진리를 증거한 사람들, 그 헌신의 깊이만큼은 두 종교가 다르지 않습니다.

1779년 강학회가 열려 한국 천주교 발상지라고도 불리는 천진암도 본래 절이 있던 자리입니다. 이벽과 권철신, 정약종 등 젊은 유학자들이 이곳에 모여 서학을 공부하며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불교의 터전 위에서 가톨릭 신앙이 싹텄다는 사실은, 우리 종교사의 깊고 아름다운 인연을 보여줍니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는 두 종교의 우정을 상징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요셉) 교수가 제작한 ‘관세음보살상’입니다. 보살의 자비로운 얼굴에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담아낸 이 작품은 법정 스님의 뜻으로 세워졌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가 지향하는 사랑과 자비가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전해주는 작품입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닙니다. 부처님 오신 날, 거리를 밝히는 등불 앞에서 고백합니다. 저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 살고 있지만, 이웃의 자비로운 빛 또한 기꺼이 존중하고 감사히 여깁니다. 등불 하나가 어둠을 밝히듯 서로를 향한 존중과 이해가 이 사회를 조금 더 따뜻하게 비출 것을 기대하며, 오늘은 두 손을 모아 ‘합장’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