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은 잊히고 인간은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되는 시대, 종교는 어떤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 시대의 질문에 종교학의 두 석학이 해답을 제시한다.
비교종교학의 대가로 불리는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종교학과)와 종교심리학자 성해영 교수(서울대학교 종교학과)가 2011년 출간한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이후 15년 만에 개정증보판 「종교, 다시 깨달음이다」로 다시 돌아왔다. 두 학자는 종교와 영성에 관한 대담을 통해 어제의 믿음을 해부하고, 내일의 영성을 내다본다.
책은 먼저 ‘탈종교화’에 주목한다. 최근 국내 한 여론조사 기업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40%에 그친다. 특히 저연령층일수록 종교가 있다고 답한 비율은 낮아져, 20대 4명 중 3명은 종교가 없다.
두 저자는 이러한 현상의 뿌리에 ‘표층종교’가 있다고 분석한다. 표층종교는 경전의 문자적 의미에만 몰두하고, 종교를 ‘현재의 나’가 잘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를 말한다. 사후에 ‘좋은 곳을 가려고’ 헌금하거나 선행하는 모습도 결국 자신의 안녕을 위한 행동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이대로 사라지는 것일까. 저자들은 오히려 자유가 확대된 사회에서 개인들이 공허와 혼란을 겪고 있으며, 기성 종교가 쌓아온 지혜가 인간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템플스테이 열풍과 명상·마음챙김 애플리케이션의 확산 역시 많은 사람이 깨달음과 영성에 갈증을 느낀다는 방증이다.
특히 개정증보판에서 새로 더해진 마지막 4부는 AI 시대의 종교를 묻는다. 저자들은 종교가 맡아온 위로와 치유의 역할마저 AI가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노동과 생존의 압박에서 벗어날수록 삶과 죽음, 초월과 같은 종교의 근원적 질문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도 커진다고 본다.
이에 저자들은 표층종교의 반대 개념으로 ‘심층종교’를 제시한다. 심층종교에서 헌금과 선행은 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중심성을 넘어 더 넓은 자아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수행이 된다. 저자들이 말하는 심층종교의 핵심은 바로 ‘깨달음’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책은 20세기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의 통찰도 소환한다. 라너가 “미래의 그리스도인은 신비가이거나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듯, 신앙은 제도와 교리의 외적 수용을 넘어 하느님을 체험하는 내적 깊이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와 관상기도, 14세기 영국의 익명 수도자가 쓴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 등은 그리스도교 안에 이어져 온 관상과 수행의 전통을 보여준다.
“붓다, 예수와 같은 위대한 스승은 인간이 지향해야 할 궁극의 깨달음을 또렷하게 설파했습니다. 비록 후대의 종교 권력이 자주 왜곡했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여전히 경이롭게 다가옵니다.”(244쪽)
저자들이 말하는 깨달음은 이성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인간 이성이 다다른 한계 너머의 깊이를 체험하는 일이다. 신앙은 지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을 넘어서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책은 AI 시대의 종교가 제도와 형식, 자기 안녕을 비는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인간 내면을 깊이 두드리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묻는 종교, 곧 ‘심층종교’로 돌아갈 때 종교는 다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