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우리 대부분은 첫 신앙 교육을 사제나 수도자, 교리교사, 교리서가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받는다. 필자도 그랬다.
어릴 적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 준 한 가지는 가톨릭 신앙을 나누는 일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돕는 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아는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아버지의 가족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대가족은 여러 가족을 가톨릭교회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들은 개종을 권유하지도 종교를 알리지도 않았다. 누구를 개종시키려고 나선 것이 아니라, 그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섬겼다. 그리고 그 복음화된 삶이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사람들은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다.
그 섬김을 받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내 아버지였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아버지는 집 없는 고아가 되었다. 미혼모였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를 돌봐달라며 어느 후견인에게 돈을 남겼다. 그런데 그 부도덕한 후견인은 돈을 가로챈 뒤, 아버지를 뉴저지 거리로 내쫓았다.
아버지는 당시 새로 놓인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걸어 허드슨강을 건넜고, 마침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함께 방을 빌려 살던 뉴욕 브롱크스의 아파트 건물에 도착했다. 그 어려운 시절에는 방을 빌려 사는 일이 흔했다. 사람들은 싼 거처가 필요했고, 아파트를 가진 이들은 추가 수입이 필요했다.
아버지가 현관 계단에 앉아 울고 있을 때, 장을 보고 돌아오던 헬렌 앤더슨이 그를 발견했다. 헬렌은 아버지와 할머니가 방을 빌려 살던 집의 주인이었다.
헬렌은 아버지에게 왜 그곳에 있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헬렌은 장바구니를 건네며 자기 집으로 들고 올라오라고 했다. 그 집에는 남편 잭과 두 아이 프레드, 샐리가 살고 있었다.
아버지에 따르면, 그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버지가 처음 한 일은 의자 위에 올라가 옷 모델이 되는 것이었다. 헬렌이 샐리의 드레스를 만들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새 여동생과 같은 체격이었기 때문에 치마단을 맞추는 모델 노릇을 해야 했다.
그다음에는 아버지가 새 어머니가 지어 준 이름인 윈스롭이 아니라 원래의 프레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앤더슨 부부는 아버지가 싫어하는 이름을 억지로 쓰게 하지 않았다. 대신 원래 아들 프레드를 그의 중간 이름인 조지로 부르기로 했다.
이름뿐만이 아니라, 아버지에게는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종교적 정체성도 있었다. 할머니는 독일 이민자 출신 루터교 신자였다. 앤더슨 부부는 그에게 가톨릭신자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만 자신들이 주일마다 미사에 참여하니, 아버지도 주일마다 자기 교회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매주 헌금으로 내라고 니켈, 곧 5센트짜리 동전까지 주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조지 삼촌은 내게 말했다. “네 아빠는 교회에 안 갔어! 그 니켈을 받아서 영화 보러 갔지!” 내가 부모님께 말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그 비밀을 끝까지 지켰다고 했다.
아버지는 청년이 돼서야 가톨릭신자가 되었다.
몇 해 전 가족 결혼식 뒤에 한 사촌이 왜 가족 일부는 앤더슨이라는 성을 쓰고, 일부는 그림이라는 성을 쓰는지 물었다. 그는 그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 이야기는 집안에서 화제가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우리가 두 성을 가진 한 가족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내게 앤더슨 가족을 본받아 가톨릭 신앙을 증언하라고 들려준 이야기는 내가 선교사로 살아가는 데뿐만 아니라, 애초에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개종 권유와 복음화는 다르다. 개종 권유는 사람들을 신자로 바꾸려는 시도다. 많은 경우 거기에는 장광설, 지옥불에 대한 위협, 교리서나 성경 배포, 심지어 영적·물질적 회유까지 포함된다.
가톨릭교회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증언인 복음화는 이와 다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보기로 삼는다.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는 이들에게 그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육체적, 사회적, 영적 상처를 치유하실 때, 그들에게 당신을 따르라거나 제자가 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 대개 그들에게 삶으로 돌아가 하느님께 감사드리라고 하셨다.
물론 어떤 이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해주신 일을 다른 이들에게도 하기로 선택했다. 우리는 그런 이들을 교회라고 부른다. 우리 모두도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겪는 외로움과 눈물, 고통과 혼란, 불의와 아픔을 볼 수 있도록 눈과 마음을 열어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 마음 안의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그 마음은 결국 우리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끌 것이다.
글_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 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