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보논치니와 칼다라의 〈그리스도 발치의 막달레나〉

(가톨릭신문)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이다. 복음서는 그를 십자가 곁을 지킨 여인, 빈 무덤을 찾아간 이,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난 증인으로 기억한다. 교회는 막달레나를 ‘사도들의 사도’라고 부른다. 그녀가 부활의 기쁜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한 첫 증인이기 때문이다.

예술사에서 막달레나는 또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었다. 향유 단지를 들고 풀어진 머리카락으로 그리스도의 발을 닦는 여자, 눈물로 자신의 죄를 씻어내는 여인이다. 이는 루카복음서의 ‘죄 많은 여자’, 베타니아의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방 교회 전통 안에서 겹쳐진 결과였다. 이들은 서로 구별되지만, 많은 이들이 그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막달레나를 사랑했다.

그들은 왜 성녀에게 끌렸을까. 그녀의 이야기에 죄와 은총, 속세와 천상, 육체의 아름다움과 영혼의 회심이 모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크 예술은 인간의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영적 투쟁이나 갈등을 즐겨 그렸다. 막달레나의 눈물, 향유, 보석, 거울, 해골 같은 사물들. 그것들은 헛됨을 나타내는 바니타스의 표지이자 영혼의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근대 시기, 막달레나를 주제로 한 회화나 음악이 인기였던 것도 동일한 이유였다.

그래서 1670년생 동갑내기 두 이탈리아 작곡가의 동명 오라토리오를 비교 감상하는 것은 흥미롭다. 조반니 보논치니(Giovanni Bononcini, 1670~1747)는 1690년 모데나에서 〈그리스도 발치의 막달레나(Maddalena ai piedi di Cristo)〉를 선보였다. 여기서 막달레나의 마음은 일종의 영적 전장이다. 그녀의 마음을 두고 ‘세속적 사랑’과 ‘천상적 사랑’을 의인화한 인물들이 논쟁한다. 세속의 사랑은 세상의 즐거움을 속삭이고, 천상적 사랑은 그리스도께 돌아서라고 설득한다.

안토니오 칼다라(Antonio Caldara, 1670~1736) 역시 동명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했다. 보논치니와 8~9년의 시차를 두고 나온 작품은 막달레나의 내면을 더욱 섬세하게 형상화한다. 칼다라의 판본은 등장인물에 마르타를 더해, 막달레나의 회심을 내적 갈등을 넘어 관계와 권고 속에서 일어나는 역동적 사건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복음서가 분명히 이름을 기억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단지 그리스도 발밑에서 우는 여인을 넘어선다. 요한복음에서 그녀는 부활하신 그분을 정원사로 여겼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그제야 주님을 알아본다.(요한 20,15-17 참조)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라틴어 전통은 “나를 만지지 마라(Noli me tangere)”로 옮겼다. 교부들과 신학자들이 오래도록 주해해 온 이 대목에, 프랑스 철학자 장 뤽 낭시(Jean-Luc Nancy, 1940~2021)도 주목했다. 낭시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더 이상 만지거나 붙잡을 수 없는 분이다. ‘현존’이란 소유가 아닌 역설적으로 ‘떠남’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달레나는 그리스도를 붙드는 이를 넘어,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증인이 된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감사송은 이를 전례적으로 확인해 준다. “주님께서는 동산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어 사도들 앞에서 사도 직무의 영예를 주시고 새로운 삶의 기쁜 소식을 세상 끝까지 전하게 하셨나이다.”

이는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이 제시했던 정원 속 하와와 막달레나의 대비에서 선명해진다. “낙원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죽음의 원인이 되었고(창세 3,6 참조) 무덤에서 나온 여자는 남자들에게 생명을 선포했다. 마리아는 생명으로 회복시켜 주신 분의 말씀을 전했고 하와는 죽음을 가져온 뱀의 말을 전했다.(「복음서 강해」(40편) 25)

보논치니와 칼다라의 음악은 그리스도 발치에서 울던 막달레나의 내면을 들려준다. 복음은 그 눈물이 종국에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녀는 무덤 밖에서 울었고,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알아보았고, 그분의 말씀을 전했다. 부활의 선포는 만짐과 붙듦을 넘어, 마리아 막달레나의 증언과 파견으로 완성되었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