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종소리 흐르는 골목…‘빵지순례’는 이내 ‘성지순례’가 된다

(가톨릭신문)

여름은 여행의 계절이다. 해수욕을 만끽할 수 있는 바다, 시원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계곡, 조용하게 쉬어갈 수 있는 산 등은 대표적인 여름 여행지이다. 그러나 최근 청년층 사이에서는 색다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여행지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 길 위에는 신앙도 챙길 수 있는 성당도 기다리고 있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재미와 영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이색 여행지를 소개한다. 대전의 명물 ‘성심당’에서 출발해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을 거쳐, 대전의 근현대사를 품고 있는 최종태전시관과 대전근현대사전시관까지 걸어본다.

‘빵의 도시’로

대전역에서 내리자 고소한 빵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역사 안부터 주변까지 곳곳에 빵집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이른바 ‘빵의 도시’로 불리는 대전광역시에 들어섰음이 체감됐다. 대전에는 유명한 빵집들이 많다. 빵을 맛보기 위해 대전을 찾는 흐름 속에서 ‘빵지순례’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대전시는 2021년부터 빵 축제도 열고 있다.

빵지순례지로서의 인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2025년 대전을 찾은 외지인 방문자는 연인원 9000만 명 이상으로 집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주요 목적지 중 하나가 제과점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성심당이 있다.


성심(聖心)으로부터 이어진 70년

비 내리는 덥고 습한 날씨임에도 성심당 본점은 빵을 사러 온 인파로 가득했다. 거리 곳곳에서도 빵 봉투를 든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전국구 빵집의 인기가 실감 나는 장면이다. ‘튀김소보로’, ‘시루케익’, ‘판타롱 부추빵’ 등 성심당을 상징하는 제품도 여럿이다. 튀김소보로의 누적 판매량은 1억 2천만 개를 넘어섰다. 이처럼 성심당은 대전 시민의 추억과 여행객의 발길이 모이는 장소로 자리매김해 왔다.

대전을 빵의 도시로 이끈 ‘성심당’
70주년 역사 담은 기념전 볼거리
높은 종탑이 반기는 대흥동성당
시간 품은 건축과 성미술 돋보여

성심당은 올해로 개업 7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성심당 문화원에서는 12월 31일까지 70주년 기념전 ‘오래된 진심’을 이어간다. 1956년 고(故) 임길순(암브로시오)·한순덕(마르가리타) 부부가 노점에서 시작했던 창업 이야기부터 18개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전의 대표 향토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전시에서는 성심당(聖心堂)이 예수 성심을 닮고자 이어 온 이웃사랑과 신앙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로마 12,17 참조)라는 사훈 아래, EoC(모두를 위한 경제) 기업으로 실천해 온 인간중심, 사랑과 나눔의 경제 활동도 소개된다. 달콤한 빵과 케이크로 배를 채웠다면, 전시로 신앙의 의미도 새겨보자.

성당 종소리를 따라

성심당에서 빵을 먹고 있으니, 창문 너머로 보이는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 종소리가 들리는 곳에 가게를 만들고 싶었다는 창업주의 말이 와닿았다. 분주하던 인파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리를 정리하고 종소리를 따라 성당으로 향했다.

모더니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은 1963년 축성돼, 대전교구의 주교좌본당으로 지정됐다. 성당 앞에 도착하니 높이 솟아 있는 종탑이 눈에 들어왔다. 종탑은 고딕 양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2019년까지 조정형(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씨가 줄을 잡아당겨 직접 종을 쳤지만, 은퇴 이후로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 자동화 체계를 구축했다. 종 치는 모습은 직접 볼 수 없지만, 도심 한복판을 울리는 소리만은 여전하다.

성미술과 함께하는 묵상

성당 내부로 들어서니 강렬한 색채의 벽화가 눈을 사로잡는다. 프랑스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들은 프랑스 출신 화가이자 수도자인 고(故) 앙드레 부통 신부가 남긴 그림 10점이다. 부통 신부는 고(故) 이남규 작가의 ‘십자가의 길 14처’를 보고 묵상한 결과를 벽화로 표현했다. 현재는 <증인으로서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는 그리스도>만이 원본으로 남아 있고, 나머지는 2020년 정밀하게 재현됐다.

성당 마당에 조성된 4m 높이 성모상도 눈길을 끈다. 한국교회 전래 180주년을 기념해 이남규 작가가 1964년 제작했다. 한국전쟁 이후 시대의 무게를 견디며, 자식을 키워야 했던 한국의 어머니를 작품에 담았다. 곁에는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도 묻혀 있다.

성당 정면 캐노피 위에는 12사도상이 있다. 한국 조각계의 원로 최종태(요셉) 작가와 이남규 작가가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길 건너에 자리한 ‘최종태전시관’에 최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고 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전의 근현대사까지

최종태전시관에 다다르니 마당에 있는 소나무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견뎌 온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관은 대전시립미술관의 분관으로, 1958년 지어진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건물에 4월 1일 문을 열었다.

현재 전시관에서는 개관 기념 상설전 ‘최종태의 질문 - 아름다움의 발견, 그리고 창조를 위한 기록’이 열리고 있다. 신의 존재와 인간에 관해 질문해 온 최 작가의 작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관 2층 창문을 통해서는 건너편 성당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대전의 근현대사를 지나온 성당과 전시관 그리고 신의 존재를 탐구한 작품의 조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대전 원도심 대흥동 일대 곳곳에는 근현대 유산들이 있다. 현재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활용되는 대전 충청남도청 구 본관, 일제강점기 수탈 기관이던 구 동양척식회사 대전 지점에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헤레디움’ 등이 대표적이다.

빵 냄새로 시작한 길은 성당의 종소리와 성미술을 지나, 대전의 오래된 시간으로 이어졌다. 올여름 대전에서 맛과 영성, 역사가 만나는 조금 특별한 순례에 나서보자.



이호재 기자 h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