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심 깎고, 믿음 새기며… 손수 만든 파스카 초”

(가톨릭신문)

하얀 초 위에 조각칼이 천천히 지나간다. 칼끝이 스칠 때마다 십자가 문양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금빛 물감이 더해지자 초는 점차 부활의 빛을 입는다.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밝힐 파스카 초를 신자들이 손수 만들며, 공동체는 그렇게 부활을 준비하고 있었다.


손수 파스카 초를 조각하며 기쁜 부활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춘천교구 양덕원본당(주임 홍기선 히지노 신부) ‘룩스회’다.


룩스회는 2023년 ‘조각초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회원 장미진(세실리아) 씨가 2017년 대전 밀레마니 센터에서 전례초 조각을 배운 뒤, 집에 전시해 둔 전례초를 본 구역 신자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모임이 꾸려졌다. 이후 8명의 신자들이 서로의 집을 오가며 전례초를 함께 제작해 왔다.


조각초 교실은 2024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파스카 초와 제대 초를 봉헌하며 ‘룩스회’라는 이름으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도 주님 부활 대축일에 봉헌할 초를 제작하기 위해 회원들은 2월 초부터 매주 화요일 성당 ‘요한방’에 모여 작업을 이어왔다. 초를 조각하고 형태를 다듬은 뒤 도색과 수정·보완, 마감 작업까지 거치는데 약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정은 전례에 맞는 말씀을 어떤 이미지로 표현할지 고민하는 도안 작업이다.


약 한 달에 걸쳐 도안을 완성한 장 씨는 올해 파스카 초에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에 이르는 파스카 신비를 다양한 색으로 담아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표현했다. 그는 “초가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듯, 나 역시 주어진 시간 동안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주님의 집에서 봉사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전례초를 조각했다”고 전했다.



룩스회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 성모 승천 대축일, 주님 성탄 대축일 등 본당의 주요 전례에 사용할 초를 꾸준히 제작해 왔다. 또 올해는 룩스회에서 전례초를 제작한다는 소식을 접한 천주교 사도직회(팔로티회)가 초 봉헌을 요청하면서, 수도회에 봉헌할 파스카 초도 처음 조각했다.


룩스회 회원들이 모두 뛰어난 미술적 재능을 지닌 것은 아니다. 돋보기를 쓰고 한 땀 한 땀 초를 조각하고, 서툰 손끝으로 힘을 조절해 가며 조심스럽게 칼을 움직인다. 그럼에도 회원들은 입을 모아 “초 작업을 할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한다.


김화숙(아녜스) 씨는 “초를 조각하다 보면 깊이 몰입해 저도 모르게 밤을 새운 적도 있다”며 “힘든 순간마다 초를 붙잡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어느새 의지하게 된다”고 전했다.


올해 봉헌할 파스카 초를 제작한 전만준(하상 바오로) 씨 역시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던 중 룩스회에 참여해 초를 조각하면서 마음의 분심이 차츰 가라앉았다”며 “학창 시절 가장 어려워했던 과목이 미술이었는데, 뒤늦게 조각칼과 붓으로 초를 봉헌하게 돼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춘천교구 내에는 룩스회처럼 신자들이 직접 전례초를 조각해 봉헌하는 본당이 점차 늘고 있다. 현재 룩스회에는 거두리본당 신자 한 명도 함께하며 본당에 봉헌할 전례초 조각을 배우고 있다.


변경미 기자 bgm@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