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교회는 잊힌 교회가 아니라 살아있는 교회”

(가톨릭평화신문)
「순교자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를 쓴 권은정 작가가 제6대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 피랍 77주년을 맞아 봉헌된 평양교구 순교자 현양 미사에서 홍 주교의 영정에 책을 헌정하고 있다.


“초대 교구장이셨던 패트릭 번 주교님으로부터 제 전임 염수정 추기경님에 이르기까지. 열 분의 평양교구장과 수많은 사제·수도자·교우들의 기도와 희생 덕분에 분단된 지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북녘 교회는 잊힌 교회가 아니라 살아있는 교회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제11대 평양교구장(서리)을 겸하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14일 “평양교구 출신 사제와 평양교구에 뿌리를 둔 사제, 그리고 북방 선교를 지향하는 모든 사제가 모여 평화 통일과 북녘 교회 재건을 기원하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며 이같이 역설했다. 한국인 첫 평양교구장 ‘하느님의 종’ 홍용호 주교의 피랍 77주년을 맞아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 문화관 경당에서 봉헌된 순교자 현양 미사에서다. 이어 열린 평양교구 설정 100주년(2027년 3월 17일) 준비 사제 모임에는 평양교구 실향민과 그 후손, 교구 복원을 위해 ‘평양교구’ 명의로 사제품을 받은 성직자 등 30명이 참여했다.

1927년 설정된 평양교구(당시 지목구, 1939년 대목구로 승격)는 해방 후 북한 공산 정권의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제6대 교구장 홍용호 주교는 ‘착한 목자는 양 떼를 떠나지 않는다’며 교구민 곁을 지키다 1949년 5월 피랍돼 이듬해 총살된 것으로 추정되며, 교구 사제 12명도 순교했다. 사제들의 희생을 목격하고 월남한 신자들은 ‘평양교구 신우회’를 꾸렸으며, 통일 이후 교구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사명으로 ‘한 집에 신부·수녀 한 명 만들기 운동’을 펼쳤다. 평양교구 설정 80주년인 2007년 조사 결과, 이를 통해 사제 80여 명과 수도자 150여 명이 양성됐다.

 
평양교구 설정 100주년 준비를 위한 사제 전체 모임에서 전 교황대사 장인남 대주교(가운데)가 전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왼쪽)와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은 장 대주교의 형인 장인산 신부.


평안북도 실향민 2세대 장인남 대주교는 “매일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북녘의 문이 열리기를 간구한다”며 “많은 사제와 함께 기도해 큰 힘이 된다”고 밝혔다. 장 대주교는 한국인 최초 교황청 외교관이자 교황대사를 지냈다. 이날 형 장인산(청주교구 성사전담사제) 신부도 동행했다.

평양 출신 실향민 1세대인 이기헌 주교는 “오늘 이 자리가 경색된 한반도 정세 속에 위축된 신자들의 관심이 다시 모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이 주교는 평양교구 명의 신학생으로 서울 신학교에 입학해 사제품을 받은 마지막 성직자다. 1960~1970년 진행된 평양교구와 서울대교구의 신학생 양성 협정에 따라서였다. 협정 중단 이후 끊겼던 평양교구 명의 사제 양성은 2009년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정진석 추기경에 의해 재개됐다. 올해까지 28명을 배출했으며, 지금도 신학생을 모집 중이다.

이 주교와 같은 평양교구 출신 주교로는 초대 원주교구장 고 지학순 주교·전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전 마산교구장 고 박정일 주교 등이 있다. 박 주교의 친척 손자이기도 한 신민재(수원교구 반월성본당 주임) 신부는 “고향을 그리워하셨던 박 주교님의 유지를 어떻게 이룰지 고민하던 차에 선배 사제들을 뵙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평남 대동 출신 실향민 2세대인 황창희(인천교구 계산동본당 주임) 신부도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북한에 작은 성당을 짓고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며 “그날까지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행사를 주관한 평양교구 사무국장 장긍선 신부는 “사제 모임을 정례화해 북녘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연대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평양교구 사무국은 현재 북한 교회 재건을 위한 기금도 모으고 있다. 문의 : 02-727-2053, 평양교구 사무국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