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기도를] 마산교구 정하권 몬시뇰

(가톨릭신문)

‘교회론의 대가’, ‘학자 중의 학자’로 불린 정하권 몬시뇰(플로리아노?마산교구 성사전담)이 3월 29일 선종했다. 향년 99세.


고인의 장례미사는 3월 31일 마산교구 주교좌양덕동성당에서 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 주례로 봉헌됐으며, 유해는 경남 고성군 이화공원묘원 성직자 묘원에 안장됐다.


장례미사 강론에서 이 주교는 “작년 교구장 착좌 이후 가장 먼저 찾아뵌 사제가 정하권 몬시뇰이었다”면서 “누구보다 사제를 사랑하신 몬시뇰의 성품을 기억하고, 많은 제자가 몬시뇰과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주교는 또 “병문안 때 기도와 강복 직후 미동도 없던 몬시뇰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보고 함께 기도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며 “몬시뇰님은 자신의 서품 성구 ‘하느님의 모상대로’를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셨으니, 이제 천상 제단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기쁨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정 몬시뇰은 1927년 대구 군위에서 태어나 1951년 사제품을 받았다.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과 함께 사제품을 받은 ‘유일한 동기 사제’다. 서품 직후 창녕본당 주임을 역임하고, 스위스 프리부르그대학교, 프랑스 파리대학교 등에서 유학했다. 유학기간 동안 국내 교계제도가 설정되면서, 그가 사목했던 창녕본당이 대구대목구에서 부산대목구로 소속이 바뀌어 정 몬시뇰 또한 부산대목구 사제가 됐다가, 유학이 끝날 무렵에 마산교구가 생기면서 마산교구 사제로 소속이 한 번 더 바뀌었다. 이후 초대 마산교구장으로 김수환 추기경이 부임했고, 대구대목구에서 시작한 ‘동기 사제’의 인연이 마산교구로 이어진 일화는 유명하다.


1966년 귀국한 정 몬시뇰은 남성동본당 주임을 역임했고, 1970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사목연구원 원장을 지냈으며, 1973년부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사무차장 겸 가톨릭대 교수로 봉직했다. 이 무렵부터 1994년 은퇴까지, 정 몬시뇰은 20여 년을 신학교 교수로 후학 양성에 헌신했다. 700여 명 사제를 가르친 이력으로 ‘사제들의 아버지’, ‘사제들의 영원한 스승’이라 불렸다. 


1975년부터 광주대건신학대학 교수로 일하며 4년여간 학장을 맡았고, 1982년부터는 대구가톨릭대 학장으로 8년, 교수로 4년간 소임했다. 대구가톨릭대 학장으로 재직하던 198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몬시뇰로 서임됐다. 사제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훌륭한 사제를 많이 길러낸 일”을 꼽은 정 몬시뇰은,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전국 교구를 찾아 신자들을 위한 강연을 펼치며 활발히 활동했다.


정 몬시뇰은 ‘외유내강’을 원칙으로 ‘사제답게’를 강조해 가르쳤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많았다. 정 몬시뇰 사제수품 60주년(2011년)과 70주년(2021년) 기념행사는 제자 사제들이 주축이 돼 마련했으며, 몬시뇰이 2022년부터 지내왔던 경남 창원 이화요양병원에도 후학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나영 기자 la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