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주님 부활 대축일

(가톨릭신문)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오늘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반전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생명에게 패배하고, 짙은 어둠이 영원한 빛에 자리를 내어준 ‘부활’의 아침입니다. 복음은 여명(黎明)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시작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으로 달려갔고, 뒤이어 베드로와 주님께서 사랑하신 제자 요한이 달려갑니다. 이들의 ‘달림’은 단순한 물리적 속도가 아니라,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으려는 영혼의 간절한 갈망입니다.


빈 무덤은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신비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빈 무덤’의 신비를 깊이 통찰했습니다.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단순히 사라지신 것이 아니라, 죽음의 영역을 무효로 하셨음을 뜻합니다. 곧 죽음이 죽음을 이겼습니다. 주님께 사랑받던 제자 요한은 베드로보다 먼저 도착했음에도, 무덤 밖에 서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는 수제자인 베드로에 대한 존경이자, 동시에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는 신중한 영성이었습니다. 뒤따라온 베드로는 주저 없이 무덤 안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상징을 발견합니다. 바로 무덤 안에 놓인 ‘아마포’와 ‘얼굴을 쌌던 수건’입니다.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은 “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 시신을 훔쳐 간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고 설명합니다. 도둑이라면 서둘러 시신만 챙겼겠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죽음의 옷을 정돈하여 남겨두셨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는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몸을 입으셨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요한 20,8)는 것은 외적 표징에서 내적 확신으로의 내면의 변화를 말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보고 믿음’이 단지 물리적 빈 공간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성경의 약속을 영적으로 깨달은 순간이라고 강조합니다. 사실 그들은 그때까지도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의 무덤, 즉 절망과 고통, 상처의 빈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봅니까? 그곳에서 단지 ‘없음’과 ‘상실’만을 본다면 우리는 여전히 무덤 밖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처럼 그 빈자리 안으로 용기 있게 들어갈 때, 죽음의 흔적은 남아있으되 생명은 그곳을 빠져나와 우리 곁에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을 목격하는 신앙인의 시선입니다.


부활은 내면을 밝히는 영원한 광명입니다. 동방 정교회의 영적 보화인 필로칼리아의 영성가들은 부활을 단지 2천 년 전의 사건으로 가두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부활은 ‘마음의 정화(Hesychia)를 통해 내면의 빛이 다시 타오르는 것’입니다. 시나이의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영혼 안에서 매일 일어나야 한다. 정욕에 묶여 있던 마음이 기도를 통해 빛을 발할 때, 그것이 바로 우리 안의 라자로가 일어나는 것이요, 주님이 무덤 문을 열고 나오시는 순간이다.”


부활은 외부의 구경거리가 아니라, 내 안의 ‘자기중심성’이라는 무덤 문을 부수고 나오는 영적인 사건입니다. 필로칼리아는 권고합니다. “네 마음을 지켜라. 그곳이 바로 주님이 묻히신 곳이며, 동시에 부활하실 장소다.” 우리가 마음의 소란을 잠재우고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 때, 부활하신 주님의 빛은 태양보다 더 밝게 우리 영혼을 비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들고 성당 문을 나서야 하겠습니까? 빈 무덤의 아마포는 주님께서 더 이상 죽음의 권세에 묶여 있지 않으심을 선포합니다. 구원은 이미 이루어졌지만, 이를 온전히 깨달은 것은 오직 부활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우리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갑시다. 죄의 습관과 미움의 수의를 무덤에 남겨두고 나옵시다. 부활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변모하는 현재의 능력’입니다.


내가 이웃을 용서할 때 부활은 시작됩니다. 절망하는 이에게 손을 내밀 때 무거운 돌무덤은 굴러갑니다. 오늘 내 마음속에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고, 세상이라는 넓은 들판을 향해 달려갑시다. 주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갈릴래아로 가셨듯이, 그분은 이미 우리 삶의 현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스도 부활하셨네, 진실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글 _ 곽승룡 비오 신부(대전교구 태안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