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뭘까요? 경이로움은 뭘까요? 우리는 언제 기적을 만날까요? 어떤 일을 마주해도 잘 놀라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깜짝이벤트는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싫어합니다. 선의로 준비한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무감각한 반응. 정연한 논리와 일관된 법칙에 익숙한 사람은 새로움 앞에서도 ‘그렇지 뭐’ 합니다. 반면 잘 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기한 일이 많은 이 사람은 놀라지 않는 사람의 평안이 가끔 부럽기도 합니다. 반짝 눈을 떠 놀라다 보면 세상살이에 덜 노련한, 경험 미숙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해서 애써 무덤덤한 척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신가요? 덤덤한 쪽? 잘 놀라는 쪽? 타고난 기질이 어디에 기울어 있던 우리는 순진함과 노련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나름 애쓰면서 살지요. 저는 경이로움을 잘 발견하고 잘 놀라는 편이라 매일 감사와 기쁨의 조각들을 기록하고 있어요. 나중에 돌아보면 소중한 보물이 되어요. 동시에 슬픔에도 잘 이입이 되어 마음이 자주 아파요. 그래서 마음의 추를 덤덤함으로 애써 옮기려고 하는데, 산책길의 기도는 그 평형을 잡는 좋은 안내자입니다.
어제도 어김없이 걷다가 어떤 기적을 만났어요. 활짝 핀 개나리 무리! 먼 땅에선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그 비극이 우리에겐 코스피 지수로 환원되어 전해져 슬펐고, 이 땅에선 여러 목숨을 앗아간 화재 사건이 발생했는데, 위험에 대한 경고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도 그에 대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경고가 묵살되었다니, 세상이 왜 이럴까, 한 목숨의 무게는 한 우주와 같은데, 왜 이렇게 우리는 같은 비극을 반복할까.
이런 생각에 잠겨 걷다가 그만 넘어져 살짝 발목이 접질렸네요. 근처에 나무 벤치가 있어 앉았는데, 그 덕분에 개나리 꽃잎을 한참 바라볼 수 있었어요. 발목 통증도, 세상 시름도 잊고 활짝 웃었답니다.
봄이 참 좋아요. 김소연 시인은 봄을 두고, ‘봄,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기적’이라고 했지요. 겨울 동안 우리가 무얼 했든지 상관하지 않고 이렇게 어김없이 예쁘게 우리 앞에 다가오는 기적.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40일의 참회와 정화를 지나서 주님 부활로 이어지는 40일의 시간이 봄과 겹쳐 있어서, 경이를 온전히 보여주어 참 좋습니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경이로움에 대해 “앎도 아니고, 앎을 그만두는 것도 아니다”라며, 경이로움은 ‘움직이는 무덤’이라고 했네요. 이때 움직임은 추동력, 밀어 올리는 힘 같은 것. 땅 밑에서 꽃을 피워내는 힘, 죽음을 넘어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힘과 비슷합니다.
“와서 보아라, 주님의 업적을 세상에 놀라운 일을 이루신 그분의 업적을!”(시편 46,9) 시름 많은 세상에서 여전히 하느님이 우리를 어떻게 놀라게 하실지 기다리며 하루를 엽니다. 발을 삔 덕분에 산책길에 흘낏 지나치던 꽃 덤불 앞에서 여리고도 강인한 꽃잎들을 마주할 수 있었던 어제도 기적이었고요. 오늘은 또 어떤 경이 앞에서 눈을 뜨게 될까, 기적처럼 전쟁이 끝날까, 전선을 뚫고 평화를 전하려고 누가 올까,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