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루카 18,41)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아이에게 엄마란 무엇이든 들어줘야 하는 존재일 것입니다. 말 못 하는 아이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온 감각을 동원해 주의를 기울여도 넘겨짚기 일쑤입니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엄마는 속수무책 당황하는 날들의 연속입니다. 당장은 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길러 내리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힘든 시간을 버텨 냅니다.
아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한결 수월해집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라는 질문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두 딸에게 이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큰아이 카타리나는 “제가 울 때, 제 눈물을 꼭꼭 닦아 주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이나 된 아이가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이겠다고?’라는 말이 혀끝에서 맴돌았지만 ‘그래도 내 아이를 믿어야지’ 마음을 고쳐먹고 말했습니다.
“그래, 네가 울 때 엄마가 네 눈물을 꼭꼭 닦아줄게.” 그리하여 카타리나가 울던 날, 무슨 일인지 묻지 않고 말없이 눈물만 닦아 주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카타리나는 눈물과 함께 눈물이 날 만했던 일까지도 씻어 내는 것 같았습니다.
일상을 함께하는 가족이라면
예수처럼 먼저 묻고 살핀 뒤 바라는 것 해주는 과정 필요
작은아이 엘리사벳은 “제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꼬옥 안아 주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나 된 아이가 매일 안아 달라고?’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올 뻔했지만 꾹 참고 대답했습니다. “그래, 네가 오면 엄마가 꼬옥 안아 줄게.” 엘리사벳이 돌아올 무렵이면 두 팔을 벌리고 기다렸습니다.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한참을 안아 주었습니다. 엘리사벳은 그 시간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하루의 피로가 싹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언젠가 친한 친구가 제게 배우자 아우구스티노는 어떤 사람인지 물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제 발에 딱 맞는 신발과도 같은 사람이라 대답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한 26년 동안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나요?”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은 것 같습니다. 제 대답을 기억해 두었다가 알맞은 순간에 실천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지만 세월 속에서 제게 딱 맞는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일상을 함께 하는 가족이라면, 서로에게 예수님의 질문을 해야 합니다. 질문하고 대답하는 대화의 과정이 바로 가족의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질문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질문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먼저 묻고 살핀 후에 바라는 것을 해 주어야 합니다.
루카 복음 18장 41절에서 예수님의 질문에 맹인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답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맹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보이지 않아도 믿는 마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가족을 이루고 가정을 꾸려 나간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껴안는 일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막막한 순간에도, 스스로를 믿고 또 서로를 믿는 그 마음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글 _ 김정은 클라라(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