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복음살이]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준공 10년, ‘평화의 섬’ 향한 외침

(가톨릭신문)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동에 자리한 제주 해군기지가 2월 26일 준공 10년을 맞았다. 추진 과정부터 준공까지 해군기지를 둘러싼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계획대로 기지가 들어섰고 현재는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해군기지 철수를 요구하며 평화를 말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제주교구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가 있다. 평화의 섬을 꿈꾸는 이들의 외침을 전한다.



“부당한 해군기지가 사라지고, 구럼비와 바다가 본래 있던 그 모습을 되찾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곳에서 죽어가던 생명들이 살아나고, 온 세상 생명들이 평안히 살아갈 날이 오길 기도합니다.”


3월 21일 제주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는 해군기지 철수와 평화를 촉구하는 외침이 이어지고 있었다.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장 김성환 신부(콜베·예수회)를 비롯한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곳에 모여 오전 7시 ‘강정생명평화 백배’, 오전 11시 강정미사천막 생명평화미사, 정오 ‘인간 띠 잇기’ 등의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


준공 10년… 다시 제주 해군기지


현장에서는 정부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거부해야 한다는 발언이 주를 이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발발한 전쟁에서 이란이 페르시아만의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중국·일본·프랑스·영국 등에 해군 파병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제주 해군기지를 다시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파병 여부에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파견 연장 동의안」에 포함된 단서 조항을 근거로 한 청해부대의 파병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청해부대가 파병될 경우 제주 해군기지를 모항(母港)으로 하는 구축함들이 임무에 투입되기 때문에, 제주가 전쟁에 개입될 수 있는 우려가 나온다.




센터와 강정공소,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등을 포함한 제주 시민단체들은 3월 1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트럼프가 전쟁에 한국 등 동맹국을 끌어들이면, 기동함대사령부가 있는 제주 해군기지에서 이란 인근 해상으로 파병 부대가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해군기지의 운용 방식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군함의 이용 목적이 아니라는 해군 측 주장과 달리, 미 해군 이지스함과 항공모함 등이 여러 차례 기항했으며, 제주 공해에는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한·미·일 연합 훈련 ‘프리덤 엣지’가 정례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이때 제주 해군기지에서 함정이 파견된다. 이는 해군기지를 해상 안전을 위한 탐색구조 훈련에 이용한다는 기존 약속과 달리 다영역 작전 훈련에 활용하는 것으로, 유사시 해군기지가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이태호 센터장은 “이번 전쟁이 보여주듯 미국과 군사 분쟁이 발생하면 미국 본토가 아닌 인근 국가의 미군 시설이 공격받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는 이런 위험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공격 훈련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기를 내려놓을 때 군사적 긴장이 해소된다”며 “해군기지에 관심을 갖고 평화를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의 복음, 외침의 원동력


해군기지가 미군의 군사 목적으로 이용될 것이란 전망은 추진 과정에서부터 나왔다. 제주 민군복합항 항만시설 설계지침에 ‘항공모함 필요 수심은 CNFK(주한 미 해군) 요구를 반영해 15.2m로 확보’라는 표현이 담겨 해군기지 건설에 미 해군의 요구사항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2015년에는 로사 프란제티 전 주한미해군사령관이 제주 해군기지로 미군 함정을 보내길 희망한다는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밖에도 해군기지 추진 과정부터 준공까지 부지 선정 절차의 정당성, 환경영향평가, 보전지역 변경, 공사 강행 과정에서의 공권력 투입, 민군복합항 실효성, 행정소송 논란 등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센터와 강정마을은 적극적으로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이어왔고, 준공 이후에도 10년 동안 매일 철수를 요구해 왔다.


그럼에도 해군기지는 완공돼 벌써 10년째 운영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묻자, 주민들은 ‘복음’을 이유로 들었다. 복음이 있기에 순간을 살며 평화를 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교구 서귀복자본당 강정공소 정선녀(잔다르크) 회장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이사 2,4),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52)와 같이 평화를 말하는 복음이 원동력”이라며 “일상의 투쟁이 무척 힘들지만 그 안에서 봉헌하는 생명평화미사에서 버틸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 이태헌(베드로 다미아노) 씨도 “오직 평화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평화의 섬으로의 회심


“군대가 떠남으로써 파괴된 자연과 평화가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강정마을이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 과정을 지켜보고 공부하는 곳이 되길 희망합니다.”


정선녀 회장은 제주가 ‘평화의 섬’이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해군기지 철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주 모슬포의 ‘알뜨르 비행장’은 해군기지 철수 이후 참고해야 할 사례로 거론된다.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중일전쟁을 위해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건설한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 전투기가 출격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아픈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다크투어리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군사 시설이 평화의 장소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태호 센터장은 “해군기지도 폐쇄된다면 알뜨르 비행장처럼 제주가 패권 경쟁에 동원됐던 과거에서 어떻게 평화의 섬으로 회귀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를 구현하려면 교회의 평화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를 위해 센터는 평화 순례, 이냐시오 영신수련 피정, 비폭력 대화 프로그램 등 제주 역사와 문화에 맞춘 다양한 교육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제주 4·3 사건,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제주 제2공항 문제 등과 연계한 교육도 진행하며 보편적인 평화 실현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성환 신부는 “성경이 전하는 ‘샬롬’은 개인의 마음만이 아니라 이웃과 다른 국가, 자연과의 평화를 포함하는 통합적 개념”이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는 ‘정당한 전쟁’이 아니라 무기를 내려놓는 ‘정당한 평화’를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준공 10년이 지났지만, 센터와 강정마을은 평화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샬롬’의 외침이 다시 울려 퍼져야 할 자리에서, 이들은 오늘도 제주 해군기지를 바라보며 백배를, 미사를 봉헌한다.



이호재 기자 h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