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와 로마의 중간에 있는 사크로 스페코(Sacro Speco, 거룩한 동굴) 수도원은 이탈리아 움브리아주 나르니 인근 산트우르바노 마을과 바시아노 마을 사이,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푸르른 곳에 비둘기 둥지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비알레 델 페르도노(용서의 길)’ 끝에서 만나는 이 수도원은 15세기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1380~1444) 시절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1213년 몇몇 형제들과 이곳을 찾은 프란치스코는 기원후 1000년 무렵부터 베네딕도회 은수자들이 사용하던 성 실베스테르 경당을 만나게 됩니다. 성인은 이곳에서 얼마간 머물기로 하고, 각자 은수자처럼 기도할 수 있는 자연 동굴을 찾아 개인기도 시간을 갖다가 저녁이 되면 경당에 모여 공동 기도를 했습니다.
제대 뒤편에는 14세기 프레스코화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프란치스코를 예수님께 안내하는 듯한 성모 마리아, 오른편에는 사도 요한과 성 실베스테르 교황의 모습이 있습니다.
경당 옆에는 성인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을 일으킬 때 사용한 우물이 있습니다. 실제로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최초로 쓴 토마스 첼라노(1185~1260)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산트우르바노 마을 근처에서 심각한 병에 걸렸을 때, 성 프란치스코는 나른한 목소리로 포도주를 요청했지만 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성인은 물을 요청했고, 십자 성호를 그어 축복했습니다. 그러자 물은 성질이 바뀌어 다른 맛을 갖게 됐습니다. 한때 순수한 물이었던 것이 훌륭한 포도주가 됐고, 가난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것을 거룩함이 가져다준 것입니다. 그 포도주를 마신 성 프란치스코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됐습니다. 만약 그 변화가 놀라운 치유의 원인이었다면, 그 놀라운 치유 자체가 기적적인 변화를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신비로운 은총 때문에 이곳은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카나의 혼인 잔치 기적처럼 ‘프란치스칸의 카나’라고 불립니다.
경당과 우물이 있던 자리에는 14세기에 사각 회랑이 더해졌습니다. 15세기에는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가 회랑 위 2층에 수도자들의 독방 여섯 개를 마련했고, 그 아래는 형제들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공동 식당을 두었습니다. 사각 회랑은 수도원 안의 여러 공간을 이어 주는 전형적인 정원이자, 형제들의 삶을 이어 주는 소통의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크로 스페코 수도원의 사각 정원은 더욱 특별합니다. 세 면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나머지 한 면은 아름다운 자연 풍경으로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서면 사람과 자연과 하느님이 함께 머무는 듯한 영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수도원 밖으로 나와 십자가의 길 14처가 만들어진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프란치스코의 독방과 기도소가 함께 붙어있는 작은 경당에 도착합니다. 프란치스코는 갈라진 바위틈에서 자주 기도했지만, 건강이 나빠지자 형제들은 그를 치료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돌로 작은 독방을 만들었습니다. 그 안에는 조금이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나무로 된 침대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성인이 병중에 사용했던 나무 침대는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몸이 아픈 프란치스코가 성 실베스테르 경당까지 내려오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던 형제들은 독방 옆에 기도소를 마련했습니다. 저녁 기도 시간이 되면 형제들은 경당이 아니라 이곳으로 올라와 함께 기도했다고 전해집니다.
기도소 벽에는 프란치스코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과 관련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독방 옆에는 ‘천사의 기둥’이라고 불리는 돌탑도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영혼까지 찢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 프란치스코가 기도로 위로를 청하자 천사가 나타나 바이올린으로 천상의 음악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이 돌탑은 그 은총의 순간을 기념합니다.
독방 앞 초원에는 수백 년 된 밤나무가 서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성인이 이곳을 떠나기 전 두 팔을 들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인사를 하고, 그곳에 자신이 아플 때 사용한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 지팡이가 자라서 튼튼한 밤나무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프란치스코의 독방과 기도소에서 조금 더 위로 오르면, 성인이 자주 기도하던 갈라진 거룩한 바위 동굴을 만납니다. 갈라진 바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창에 찔려 성혈이 흐르는 늑골을 상징하기에, 프란치스코에게는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일치하기 위한 충분한 장소였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날을 머물며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숨소리로 고요하고 어두운 갈라진 바위 동굴을 채웠고 눈물로 땅을 적시어 구세주의 수난을 큰 소리를 내며 슬퍼하였다고 합니다.
사크로 스페코 수도원은 포도주의 기적으로 육적인 위로를, 천사의 음악으로 영적인 위로를 주신 주님 사랑이 꽃피운 장소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위로의 힘으로 예수님의 수난에 온전히 일치하려 했던 프란치스코의 슬픔이 깊이 배어 있는 땅이기도 합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