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포도주 기적으로 주님 현존 보여 주신 장소, 라포레스타 성지

(가톨릭신문)

오늘날 ‘라 포레스타’ 또는 ‘산타 마리아 델라 포레스타’ 성지로 불리는 이곳에는 11세기 성 파비아노 교황(236~250년 재위)에게 봉헌된 자그마한 성당과 가난한 사제가 머물던 2층짜리 숙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작은 채소밭과 포도밭이 있었습니다.

성지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는 옛 제대가 남아 있는 성 파비아노 성당의 모습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제대 뒤편 둥근 벽감의 그림들은 15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 세바스티아노, 성 파비아노, 성 요한 세례자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순교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현재 성당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이곳에 머물던 시기(1346~1568년)에 성 파비아노 성당의 왼쪽 벽을 허물어 확장한 것입니다. 현재 성당은 숲속의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산타 마리아 델라 포레스타’라는 이름을 새로 갖게 되었습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제대 위 유리로 가린 벽감 안에는 언뜻 보면 아기 예수님의 탄생 장면처럼 보이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기 마리아의 탄생을 묘사한 장면이며, 그 옆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인물은 마리아의 어머니 성 안나입니다.

프란치스코와 관련된 이곳의 이야기는 1225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성인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엘리아 수사의 권유와 훗날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되는 우골리노 추기경의 초청으로 프란치스코는 리에티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우골리노 추기경은 프란치스코의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당시 리에티에는 호노리오 3세 교황이 머물고 있었고, 유능한 교황 주치의들도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가 리에티에 온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성인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근처 마을에서까지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부담을 느낀 프란치스코는 리에티 성문을 들어서지도 않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는 리에티에서 5km 떨어진, ‘숲’이라는 뜻을 지닌 라 포레스타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온 네 명의 형제들 레오, 베르나르도, 안젤로, 마세오와 함께 그곳에서 50일가량 머물며 눈 수술을 기다렸습니다.

그동안 성인은 자신이 기도하기 좋아하던 갈라진 바위 동굴에서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어려움을 주님께 맡기며 자비를 청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이곳에 머문다는 사실이 리에티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이 평화로운 시간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깊은 산속까지 모여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포도가 맛있게 익어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오후의 태양은 한여름과 다를 바 없이 뜨거웠고, 산속까지 걸어온 사람들은 허기지고 목이 말랐습니다. 그들에게 라 포레스타의 탐스러운 포도는 유혹을 넘어 하나의 선물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포도밭 주인이었던 담당 신부에게 묻지도 않고,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그 자리에 앉아 포도를 따 먹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구니에 포도를 담아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했습니다.

무참히 망가진 포도밭 절망…풍성한 포도즙 기적으로 바꿔

사람들이 마구 짓밟아 놓은 포도밭은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이 머물 곳을 내어주었던 가난한 신부의 마음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그 슬픔은 곧 이 모든 일이 프란치스코 때문에 일어났다는 원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포도밭은 신부에게 일 년 동안 삶을 이어 가게 해 주는 생계의 터전이었고, 미사에 꼭 필요한 포도주를 마련해 주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실망하고 화가 나 있던 가난한 신부에게 프란치스코는 말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누구에게도 무례한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 안에서, 그리고 제 말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적어도 두 배의 포도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당신께 채워드리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한 뒤, 남아 있는 포도를 모아 포도즙을 짜는 틀에 넣고 사람들에게 밟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프란치스코의 말처럼 많은 양의 포도즙이 흘러나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주님의 현존 앞에서 두려움과 찬미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포도즙을 짜던 틀 반대편에는 프란치스코와 동료들이 잠자고 식사를 했던 장소를 기념하는 제대가 있습니다. 그 왼쪽 벽에는 식사 준비를 위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벽난로의 나무 그을음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 장소와 연결된 옛 수도원의 작은 사각 정원을 지나 오른편 통로의 계단을 내려가면, 프란치스코가 기도했던 갈라진 바위 절벽 동굴에 이릅니다.

성인이 머물던 이 동굴에서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면, 지금은 평원이 된 리에티 계곡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당시에는 배를 타고 반대편으로 건너갈 만큼 물이 많은 호수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프란치스코가 이곳에서 바람 형제와 물 자매에 대한 <피조물의 찬가> 일부를 썼다고 말합니다. 눈병으로 고통받던 시기에 성인은 시각에 의지하기보다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 깊이 느끼며, 모든 피조물 안에서 그분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시각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하느님을 찾았던 프란치스코처럼, 현재 라 포레스타에는 ‘몬도 엑스(Mondo X)’라는 공동체가 살고 있습니다. 이 공동체는 1960년대 밀라노의 엘리지오 신부의 구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마약이나 세상의 편리함 속에서 자신을 잃고 더 이상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모여, 기도와 노동, 그리고 함께 사는 형제들의 사랑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산과 바람과 물이 있는 이 숲속에서, 이들은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과 참된 세상을 찾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