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행복의 길을 묻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신앙’을 통해 참된 행복을 ‘미리 맛봄’

(가톨릭신문)

현대 한국 사회는 전례 없는 성과 중심주의와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매몰되어 있다.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의 자살률과 극도로 낮은 행복 지수는 가변적인 외부 조건인 물질적 성취, 사회적 지위, 타인과의 비교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현대인의 위기를 여실히 증명한다.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세속적 가치에 전적으로 투신하는 삶은 필연적으로 내면의 빈곤과 실존적 불안을 야기하며, 이는 곧 인간다운 삶의 근간을 해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제시한 신앙론은 단순한 종교적 위안의 차원을 넘어, 흔들리지 않는 내적 토대를 구축하고 참된 행복을 회복하기 위한 최고의 전략이 된다.
 

물질적 가치에 매몰된 현대인

맹목적 정신·우둔한 감각 속에

영적인 선 추구하는 능력 상실

정신의 맹목과 감각의 우둔함이 만연한 현실

토마스는 인간이 신앙의 덕을 잃어버려 영적인 선을 보지 못하는 원인으로 ‘정신의 맹목(caecitas mentis)’과 ‘감각의 우둔함(hebetudo sensus)’을 제시한다.(II-II,15,1-3) 그의 정교한 분석에 따르면, 육욕(luxuria)에서 비롯된 정신의 맹목은 지성이 마땅히 지향해야 할 영적인 원리에 대해 반감을 갖거나 낮은 가치에 과도하게 집착할 때 발생한다. 또한 탐식(gula)에서 비롯된 감각의 우둔함은 정신을 무디게 하여 영적인 선들을 고찰하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SNS를 통한 끊임없는 비교, 보편화된 성형수술과 같은 외모 지상주의, 분수에 맞지 않는 명품에 집착하는 과도한 소비 열풍은 지성의 렌즈를 좁히는 현대판 ‘정신의 맹목’이다. 감각적인 자극과 즉각적인 만족에만 매몰될 때, 인간의 내면은 무수한 ‘감각적 표상’으로 가득 차게 되어 더 높은 진리에 머물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절제(temperantia)’와 ‘정결(castitas)’의 덕은 지성적 작용의 완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필수적인 ‘정화 장치’다. 절제는 인간의 욕망을 맹렬하게 끌어당기는 감각적 장애물들을 제거함으로써 지성이 신적 빛을 수용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II-II,15,3) 그렇다면 토마스가 이를 통해 지키고자 하는 ‘신앙의 덕’이란 무엇인가?

불확실한 가변성을 넘어서는 신앙의 확실성

토마스는 ‘신앙(fides)’을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도록 만드는 정신의 습성이며, 명료하지 않은 것에 지성이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II-II,4,1)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신앙은 단순한 감정적 동요가 아니라 엄밀한 ‘지성의 행위’다. 인식론적 관점에서 신앙은 ‘지식(scientia)’과 ‘이해(intellectus)’ 같은 명백한 직관이 결여되어 있지만, 한쪽 편을 확고하게 고수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의견(opinio)’과도 구별된다.(II-II,2,1) 

현대인이 겪는 불안의 근원은 가변적인 인간적 지식과 불확실한 세속 가치에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거는 데 있다. 반면, 신앙의 확실성은 오류가 있을 수 있는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결코 속일 수 없는 ‘제1진리’(Veritas Prima)라는 견고한 원천에 근거한다.(II-II,4,8)

신앙의 역동적 구조에서 주목할 점은 그것이 ‘의지의 명령’에 의해 완성되는 지성적 동의라는 사실이다. 지성은 대상을 명확히 직관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적 권위를 신뢰하는 의지는 지성을 결정적인 동의로 움직이게 한다. 이는 가변적인 인간 이성의 한계를 자각한 주체가 자신을 오류 없는 신적 진리에 고정시키려는 실존적 선택이자 투신이다. 현대 사회의 불신앙은 대개 진리를 능동적으로 거부하고 자신의 판단만을 고집하는 ‘의지의 완고함(pertinacia)’에서 기인한다. 
 

절제·정결 통해 지성 정화하고

진리 거부하는 ‘불신앙’ 버려야

진정한 행복 경험할 수 있어

형상화된 신앙: 사랑으로 완성되는 실천적 행복의 전략

토마스에게 신앙은 미래에 완성될 완벽한 행복을 이 세상에서 미리 체험하게 하는 ‘미리 맛봄(prelibatio)’을 가능하게 해 주며, 우리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도록 만드는 정신의 습성’이다.(II-II,4,1)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토마스는 지성적 동의에만 머무는 ‘형상화되지 않은 신앙(fides informis)’과 참사랑(caritas)을 통해 완성되는 ‘형상화된 신앙(fides formata)’을 엄격히 구분한다.(II-II,4,5) 신앙이 참된 덕이 되기 위해서는 의지가 사랑을 통해 궁극적인 선인 하느님을 향해 오류 없이 지향되어야 한다. 사랑이 결여된 신앙은 ‘죽은 신앙’과 같으며, 오직 사랑으로 형상화될 때만 신앙은 인간을 최종 목적인 행복으로 인도하는 살아있는 힘이 된다.

‘미리 맛봄’의 개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신앙이 사랑과 결합할 때, 미래에 완성될 참행복은 “일종의 시작의 형태로 우리 안에 현존”(「신학요강」 1, 2)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고단한 일상의 염려 속에서도 천상의 기쁨을 현재의 삶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나약해진 의지를 회복시키는 구체적인 기제이다. 개인주의와 고독사 문제가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신앙의 형상화는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특히 토마스는 인간의 행위 안에서 ‘말보다 강력한 실례(實例)의 힘’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신앙인이 사랑을 실천하는 거룩한 생활의 모범을 보일 때, 이는 단순한 논쟁이나 강요보다 더 강력하게 사회적 연대를 회복하고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수단이 된다. 참사랑에 의해 형상화된 신앙은 자신의 가치를 사회적 성취가 아닌 신적 토대 위에서 발견하게 하며, 이러한 발견은 필연적으로 이웃을 향한 나눔과 헌신으로 이어진다. 이는 현대인이 처한 고립과 소외를 극복하고 공동체적 행복을 창출하는 최고의 실천적 전략이다.

토마스의 신앙론이 보여주는 정신의 정화, 신앙의 확실성 그리고 사랑을 통한 완성은 무한 경쟁의 굴레에서 소진된 현대인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항구를 제공한다.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투신이지만, 그것은 주체의 내면에서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 된다. 현대인이 외부적 성취나 타인의 시선이라는 가변적 토대를 버리고, 내면의 신적 토대 위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때, 비로소 무한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와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토마스가 강조한 것처럼, 신앙을 통해 미래의 행복을 오늘 여기에서 미리 맛보며 사랑의 실례를 남기는 삶이야말로 성과 중심주의의 그늘을 벗어나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글_ 박승찬 엘리야(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