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57) 남북 신자 첫 통일 세미나

(가톨릭신문)

“남북한 천주교 신자들이 분단 반세기 만에 만났다. 남북한 및 해외 천주교인들은 10월 30일 뉴저지 포트리시 힐튼호텔에서 ‘조국 통일을 위한 천주교인의 역할’과 ‘남북 해외 천주교인의 연대 강화’를 주제로 세 차례의 세미나를 가졌다.

이 세미나에서 남측의 장덕필(니콜라오) 명동본당 주임신부와 손병두(요한 보스코) 평신도사도직협의회 국제분과위원장이, 북측에서는 장재철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장, 김유철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각각 주제발표했다. 남북 참가자들은 일요일인 29일 뉴욕 소재 퀸즈한인성당에서 1000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교민 신자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최창무(안드레아)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이 미사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전제, ‘평양의 장충성당 교우와 남한과 해외 신자들이 함께 미사를 드리면서 하나임을 느낄 수 있다’고 양측의 만남에 기쁨을 표시했다. 이어 차성근 장충성당 회장은 ‘북측 신자들은 미흡하나마 주일을 거룩히 지켜왔다’며 ‘오늘 우리가 처음 만나지만 여기에 그치지 말고 통일의 그날까지 함께 하기를 기원하자’고 인사했다.”(가톨릭신문 1995년 11월 5일자 1면)

 

1995년 뉴욕에서 역사적 만남

남북 천주교 신자 친교 이루며

체제·이념 초월한 형제애 나눠

분단 50년 만의 감격스러운 만남

1995년 10월 30일, 분단 50년 만에 처음으로 남한과 북한의 신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체제와 이념을 초월한 형제애를 나눴습니다. 그동안 남한 천주교 인사들의 간헐적인 북한 방문은 있었지만 남북한과 해외의 천주교 신자들이 직접 모임을 갖고 통일을 위한 논의를 한 것은 분단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당시의 감격적인 만남의 순간들을 가톨릭신문은 11월 5일자 1면 보도기사에 이어 3면에서 상세하게 전했습니다. 미국 뉴욕 퀸즈본당 주임 안상인(요셉) 신부는 “여기 특별히 반가운 손님들이 오셨다”며 “우리 모두 북한의 형제들을 뜨겁게 환영하자”고 인사했습니다. 이어 북한 장충성당 차성근 회장은 “해외 교우들에게 장충성당 교우들의 뜨거운 인사를 전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만남에서 특히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노인들은 북측 참가자들을 붙들고 눈물을 흘려 새삼 분단의 아픔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황해도 출신 신자들은 앞다퉈 북한 신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고, 북한 신자들은 미사에 앞서 안상인 신부에게 북에서 신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가톨릭 기도서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만남 이틀째인 28일 저녁에는 만찬을 함께 하며 일치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함께 어우러져 친교를 나누던 남북한 신자들은 아쉬운 이별의 시간이 되자 서로의 어깨를 껴안고 정을 나눴고, 숙소인 힐튼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리랑, 도라지 등 남북한 신자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우리 민요를 열창했습니다.

남북 교류와 인도적 지원 물꼬 터

1995년은 통일과 민족화해 분야에서 큰 의미가 있는 상징적인 해였습니다. 서울대교구가 3월 1일 민족화해위원회를 공식 출범시키면서 북한을 바라보는 교회의 사목적 인식에도 중요한 전환이 이뤄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북한을 침묵의 교회나 타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대화와 화해를 통해 일치를 이뤄야 할 상대로 여기게 됐습니다. 주교회의도 1999년 기존 ‘북한선교위원회’의 명칭을 ‘민족화해위원회’로 바꾸고 북한 선교를 형제적 나눔으로 재정의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남측의 민화위와 북측의 조선천주교인협회간의 소통이 이뤄지고 마침내 뜻깊은 만남이 성사된 것입니다. 당시 세미나는 학술 토론 자체보다 단절됐던 남북 교회 구성원들이 공식적으로 만나 끊어졌던 관계를 잇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남북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확인함으로써 향후 남북 간의 인도적 지원과 인적 교류를 상설화하는 공식적인 고리를 만들어내는데 그 참된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남측에서는 최창무 주교(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를 포함해 7명이, 북측에서는 장재철 위원장(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장)과 차성근 회장(평양 장충성당 회장) 등 5명이 대표단으로 참석했습니다. 해외 대표단은 박창득 신부(아우구스티노·미주 교포 사목부 총대리) 등 5명으로 구성됐습니다.

 

신뢰 구축·교류 위한 대화로

남측 사제단 공식 방북 성사

민족화해 사목 지속 기반 마련

통일세미나의 성과와 영향

1995년의 뉴욕 세미나는 일회적인 교류에 그치지 않고, 남북 천주교 관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1년 반 뒤인 1997년 6월 4일부터 7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는 제2차 만남이 성사됐습니다.

베이징 세미나는 일회성 만남을 넘어 지속 가능한 교류와 민족화해 노력의 토대를 구축하고자 실무적 성격의 대화로 진행됐습니다. 이 세미나에서는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방북 추진과 이에 앞선 남측 관계자의 방북, 명동성당과 장충성당의 자매결연, 상호 방문 등이 논의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차례의 세미나를 통해 구축된 신뢰를 바탕으로, 1998년 5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최창무 주교 등 7명으로 구성된 남측 대표단의 공식 방북이라는 역사적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북측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회의 공식 초청으로 성사된 이 방북에서 남한 사제단은 평양 장충성당에서 북한 신자들과 함께 직접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분단 이후 한국 주교가 사목적 목적으로 북한을 공식 방문해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한 첫 사례가 됐습니다.

이는 한국교회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계기로 이어졌습니다.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0년 6월까지 서울대교구 민화위를 통해 총 78억 3000여만 원에 달하는 식량과 긴급 구호 자금이 북한 수재민과 취약계층에 전달됐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여정

1995년 남북 가톨릭 신자 간의 첫 공동 세미나는 단지 50년 만의 악수나 일회성 만남에 그치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남한교회가 북한 가톨릭 공동체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공식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됐으며, 남한교회 내부에 지속적인 민족화해 사목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2026년 7월 현재 한반도는 분단 81년, 6·25전쟁 정전 73년을 맞이했지만 남북 관계에 있어서는 대화 채널이 전면 단절된 극단적인 경색 국면에 놓여 있습니다. 북한은 2024년 대한민국을 ‘적대국가’로 규정한 데 이어 2026년 개헌에서는 통일 관련 표현을 삭제하고 영토 조항을 신설하는 등 ‘두 국가’ 노선을 명확히 제도화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여전히 실천적이고도 다각적인 화해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김주영(시몬) 주교는 2025년 8월 15일 발표한 ‘한반도 분단 80년 특별 사목 서한’에서 “불신과 미움 속에서 무기와 군사력을 방패 삼아 상대를 굴복시켜 얻은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북한 동포를 형제자매로 존중하고, 호혜적 협력에 기반한 교류를 지지하며 함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