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 친밀하게 사귐 또는 그런 교분’
‘사교: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 사귐’
친교와 사교, 두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은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친교에는 ‘친밀하게’라는 의미가 더해져 있다.
30여 년을 살아오고, 세례를 받고 10여 년을 천주교 신자로 지냈지만 나는 얼마 전에서야 이 두 단어의 차이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 시작은 성당 공동체 안에서 품게 된 ‘작은 의문’이었다.
올해 청년회장을 맡으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어떻게 하면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받은 은총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을까’였다. 고충을 털어놓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함께 기도하고 말씀에 비춰보는 공동체를 원했다. 물론 같이 밥을 먹고 취미와 일상을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도 필요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안에는 질문 하나가 계속 남았다.
‘성당에서 맺는 친교는 세상에서 사람들과 나누는 친교와 무엇이 다를까.’ 그러던 중 누군가로부터 “함께 술자리를 갖는 것도 친교”라는 말을 들었다. 이에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성당 공동체는 단지 성당 내 단체이기에 신앙 공동체가 되는 것일까.’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미사 중,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 내가 품고 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성당 공동체에서 친교를 맺는다면 세상에서 이뤄지는 것은 사교다. 그런데 만약 세상에서의 사교를 그대로 성당 공동체 안으로 가져온다면, 그것 역시 사교에 머물게 된다.
친교란 무엇일까. 서로 일상의 한가운데에서 주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는지, 서로 주님께서 건네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서로 그 작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지였다. 함께 매일미사를 드리며 하루를 주님께 봉헌하고, 누군가의 아픔을 들었을 때 먼저 기도를 떠올리고 때로는 아무런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함께 기도하자”고 말해줄 수 있는 관계. 나는 그것이 신앙 공동체가 맺는 친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1코린 1,9)
하느님께선 먼저 우리를 부르시어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게 하셨고, 우리는 그 친교 안에서 서로를 만났다. 즉 사교와 달리 친교는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신 관계의 모습이다.
이 지점에서 친교와 사교의 차이가 더욱 분명해진다. 사교가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넓히고 가까워지는 것이라면, 친교는 서로의 관계 안에서 함께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이제 공동체 안에서 좋은 관계를 맺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주님을 향해 걸어가는 관계를 더 바란다.
얼마나 자주 만났는가보다 매일 함께 미사를 진심으로 드렸는가. 얼마나 즐거웠는가보다 헤어진 뒤 서로를 위해 한 번이라도 기도했는가. 그것이 이제 내가 생각하는 성당 공동체의 모습이다.
어쩌면 친교는 청년회에만 필요하지 않다. 성당 내 모든 공동체와 만남에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물을 때다.
‘나는 오늘 누군가와 함께한 자리에 주님을 모셨는가?’ 어쩌면 친교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 _ 정소영 에스텔(의정부교구 구리 인창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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