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빚은 신앙] “아, 이를 어쩌나”(크리스마스를 위한 그림)

(가톨릭신문)

주교님께서 내 그림을 선택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내가 운영하던 미술학원은 동네에서 유명해졌다. 조소과 출신이라며 내 그림 실력을 의심하던 학부모들도 “그 선생님은 그림도 잘 그린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교습소는 관인 학원이 됐고, 10평이던 공간을 33평으로 넓혀 옮겼다. 성당에 다니는 아이들도 자연스레 학원으로 모여들었다.

11월 중순, 길가의 플라타너스잎이 거의 다 떨어질 무렵 새로 오신 수녀님이 작업실을 찾으셨다. 성당의 크리스마스 장식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당시 학원은 아이들이 몰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수업할 만큼 바빴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에게서 지방대학 미술교육 강의도 제안받은 터라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성당에 다니던 강사가 돕겠다고 나서면서 결국 일을 맡게 됐다.

작업은 단순한 트리 장식이 아니었다. 명동대성당을 본떠 지은 성당은 천장이 높아 웬만한 크기로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 여러 스케치를 그려 신부님께 보여 드리고, 채택된 초본을 바탕으로 강사들과 3m가 넘는 무대미술 같은 그림을 제작해 설치했다. 첫 3년은 성공적이었다. 신부님도 흡족해하셨고 신자들도 해마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다렸다.

그러나 어느 해 ‘수태고지’를 주제로 한 작품을 준비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설치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뿐이었고 작업실은 좁았다. 작품을 보행로까지 펼쳐 놓고 작업해야 했다. 얇은 천에 그리던 그림이 찢어져 다시 그려야 했고, 물감은 좀처럼 마르지 않았다. 급기야 작품을 손수레에 싣고 세탁소로 옮겨 건조기로 말렸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성당 봉사가 내 일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번까지만 하고 그만둬야지’ 마음먹자 성화는 정성을 다해 완성해야 할 작품이 아니라 빨리 해치워야 할 일이 됐다. 겨우 날짜를 맞춰 설치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화가 난 듯한 성모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설렘과 기쁨으로 그렸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그해에는 번아웃 상태에서 불평하며 붓을 들었다.

작업이 끝난 뒤 수녀님은 늘 그러셨듯 난 화분과 작품 사진을 넣은 액자를 들고 찾아오셨다. 나는 그날도 전화받느라 정신이 없어 수녀님과 제대로 마주 앉지도 못했다. 한참 머뭇거리던 수녀님이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제르트루다 자매님, 어쩌지요. 사진이 안 찍혔어요.”

카메라도 기계이니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꼼꼼하신 수녀님에게 쉽게 일어날 실수는 아니었다. 더구나 해마다 빠짐없이 남겨 오던 작품 사진이었다. 나는 그 말을 단순한 우연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성 없이 그린 성화는 기록으로조차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는 성당의 일을 무조건 맡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미술대학을 나왔고 신자라고 해서 성화와 성물을 만들 자격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수녀님과 나만 알고 있던 신앙의 신비를 이제야 고백한다.

글 _ 추명희 제르트루다(수원교구 가톨릭미술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