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 요즘 우리 사회에 회자하는 말 중 하나다. 2010년 무렵 영미권에서 등장한 말로,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생활 방식을 말한다. 물건을 줄일 뿐만 아니라 적게 가짐으로써, 삶의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는 데 중점을 두고 단순하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생활 방식이라 하겠다. 일상에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사람을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막 교부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했던 원조 미니멀리스트다. 그들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분을 닮기 위해 작은 것에 만족하며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살았다. 사막 교부의 생활 방식을 보면, 즉시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의 고행과 극기는 가히 초인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인간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문제에 있어서 그들은 스스로 가난과 궁핍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철저한 포기와 이탈의 정신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최소한의 것만 둔 독방
그들은 독방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두었다. 멜라니아는 이집트 수도승들을 방문하다가 헤페스티온이라는 거룩한 수도승의 독방 안을 엿보게 되었다. 거기에 돗자리 하나, 작은 마른 빵 몇 개가 담긴 광주리 하나, 소금 바구니 하나 외에 세상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독수도승의 비품 목록을 제시하는 문헌은 없지만 여러 문헌에 산재한 자료를 통해 볼 때, 주전자, 손잡이 달린 항아리, 단지, 작업용 칼과 송곳과 방추와 바늘, 농기구 등이 필요한 기본 비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책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교부 이사야스처럼 단 한 권만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수도승들도 점차 벽장 속에 책을 쌓아 두기 시작하자 어떤 원로는 애통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예언자들은 책을 썼고, 우리 교부들은 그것을 실천했으며, 교부의 후예들은 그것을 암기했다. 그러나 당대에 와서는 책이 필사되고 체계화되었으며, 책장 속에서 무용지물이 되었다.”(익명의 압바 228)
압바 이사악은 카시아누스에게, 수도승들이 한두 개의 방으로 만족하지 않고 세속적 욕심으로 넓은 공간을 누리려고 호사스런 가구가 딸린 네다섯 개의 방이 딸린 필요 이상으로 큰 암자를 짓는다고 한탄했다.(담화집 9,5)
단순하고 검소한 의복
독수도승의 의복은 매우 단순하고 거칠고 초라했다. 아마도 성경이 엘리아와 세례자 요한에 대해 말하는 것에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엘레는 넝마 조각을 기워 걸쳤고, 깔개를 걸쳤던 수도승도 있었다. 압바 이사악의 전언에 따르면 압바 팜부스는 이렇게 말했다. “수도승의 옷은 사흘 동안 자기 암자 밖에 놓아두더라도 아무도 가지고 가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이사악 12)
당시 옷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수도복의 재질은 매우 다양했지만, 너무 남루하거나 값비싼 옷을 입어 눈에 띄지 말 것을 권고하였다. 악령이 부추기는 허영심 때문이었다. 너무 남루하지도 너무 값비싸지도 않은 옷을 입는 것이 규정이라면 규정이었다. 초기 사막 교부들은 한 벌의 투니카(Tunic) 외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권고를 지키려 노력했다. 주말과 주일 교회에 갈 때 입는 좀 더 좋은 투니카 한 벌을 소유하는 관례가 즉시 정착되었다.
엄격한 식사 규정
사막에서 음식과 음료와 관련된 규정은 매우 다양했다. 이러한 다양성은 개성, 나이, 건강 상태, 그리고 장소와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점차 체험을 바탕으로 일반 규정이 생겨났다. “식사의 빈도, 소비된 음식, 음료의 양과 질이 어떠하든지 반드시 포만감을 피하고 약간 배고플 정도로 육체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먹어야 한다”(규정집 5,5-8)는 것이다. 즉, “배불리 먹으려는 욕구가 아니라 자기 체력과 나이에 따라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양을 취하는 것”(담화집 2,21,1), 이것이 기본 원칙이며 황금률이다.
지나친 고행도 과도한 음식과 음료만큼이나 피해야 한다. 탐식의 악령은 고행을 줄이게 하며, 헛된 영광의 악령은 고행을 더 하도록 한다. 식단은 무척 단순했다. 통상 빵과 물과 소금이었고, 매일 작은 빵 두 개로 만족했다. 하지만 병자와 손님을 위해 규칙이 완화되기도 했다. 늘 애덕이 엄격함에 앞섰기 때문이다. 기름을 사용할 경우는 극소량만 사용했고, 고기는 전혀 없었다. 팔라디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마카리우스가 사순절 동안 빵도 물도 먹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는 주일에 그저 식사 분위기를 내기 위해 양배추 몇 잎을 씹는 것으로 만족했다고 한다.(「사막 교부 이렇게 살았다」, 106)
미니멀 라이프 경험
필자가 신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울 때 ‘파르보 콘텐투스’(Parvo Contentus)란 분사구를 접하고서 이 말마디가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작은 것에 만족하다’란 뜻의 이 말마디는, 자연스레 갓 시작한 필자의 수도 생활과 연결되었다. 그때부터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산다’는 기치 아래, 가능한 한 온갖 필요를 줄여나가며 최소한의 것으로 생활하는 훈련에 돌입했다. 이런 생활 방식이 서서히 몸에 배어 갔지만, 시간과 더불어 불필요한 것이 하나둘 쌓여 갔다.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산다는 것은 삶을 단순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필요하고 부차적인 것에 시간과 노력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필요한 한 가지 것(Unum Necessarium)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다. 온갖 인간적 욕망과 집착은 삶을 복잡하게 하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모으고 집착하게 만든다. 시간이 가면서 더 깊은 확신이 드는 것은, 살아가는 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에게 한 가지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죽은 후 후배들이 필자의 짐을 정리하느라 고생하지 않게 해야겠다는 것이다.
분명 4세기 이집트와 21세기 우리가 살고 있는 지리적, 사회적 환경은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사막 교부의 미니멀 라이프의 방식을 우리가 그대로 따라 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삶에 부차적인 것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본질적이고 의미 있는 것에 집중하려 했던 그들의 자세와 정신은 여전히 본받을 만하다.
우리가 신앙의 관점에서 추구해야 할 미니멀 라이프는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하는 삶의 자세일 것이다. 더 많이 소유하려, 더 많이 누리려 하다 보면 자칫 그 목표인 행복을 잃을 수 있다. 육체의 욕구를 과도하게 충족시키려 하다 보면 영혼이 병들고, 마음도 평화를 잃게 된다.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하며 영혼을 살찌우고 마음의 평정을 위한 더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고 지혜롭지 않을까?
글 _ 허성석 로무알도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대구대교구 왜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