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건 타고나는 걸까? 내 경험으로 보면 어릴 땐 그럴지 몰라도 철들고는 뿌듯함 때문에 돕는 것 같다. 학계에서도 공감이나 친사회적 행동에 유전적 차이가 있지만, 환경, 교육, 경험도 어우러져 작용한다는 게 정설이다.
나는 예닐곱 살 때부터 집안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언젠가 엄마에게 왜 셋째인 나만 심부름을 시켰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간단했다. “네가 언제나 군소리 없이 잘했거든. 가게에 갔다 오라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튀어 나갔지.” 한마디로 심부름시키기 제일 만만한 딸이었던 거다.
그중에는 전화 메시지 전달도 있었다. 전화가 귀하던 1960년대, 동네 유일한 전화가 우리 집에 있었다. 기자인 아버지의 업무용이었지만, 동네 사람들의 중요한 전화가 더 많이 걸려 왔다. 며느리의 출산, 아들의 대학 합격, 할아버지의 부고가 오면 나는 그 소식을 전하러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동네 어른들은 이런 ‘우물 앞집 셋째 딸’을 예뻐하셨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소아마비로 목발을 짚는 친구와 짝이 되었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 등하굣길에 친구 신발주머니를 들어주었을 뿐인데, 친구 엄마와 선생님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내가 뭘 그렇게 잘한 거지?’ 의아하면서도 우쭐하고 기분이 좋았다.
고등학교 때, 내 ‘돕기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주님 부활 대축일 전 고해성사 보속으로 묵주기도 10단과 희생 10번을 받았다. 낯선 ‘희생 보속’이 뭔지 수녀님께 물으니, ’기꺼이 하는 양보’라고 하셨다. 그날부터 버스에서 어르신에게 자리 양보, 동생에게 좋아하는 반찬 양보, 급한 친구에게 화장실 차례 양보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고마워했고, 엄마는 용돈까지 주시니 부수입도 짭짤했다.
그 ‘희생 보속’의 가장 큰 소득은 남을 기쁘게 하면 나도 덩달아 기뻐진다는 ‘돕기의 비밀 공식’을 알게 된 점이다. 급기야 고3 때 ‘하루 한 사람 기쁘게 하기’를 인생 목표로 정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목표 달성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친구에게 ‘옷이 잘 어울린다’라고 하거나, 전화 상담원에게 친절하다는 작은 칭찬도 효과 만점이다. 아기 엄마의 유모차 이동을 돕거나, 교통카드 잔액이 모자란 학생 버스비를 대신 내주면 기분이 더욱 좋아진다.
아무도 기쁘게 하지 못한 밤에는 휴대전화 연락처를 훑어보고, 한 사람을 골라 이모티콘과 함께 안부를 보내면 십중팔구 “이 밤중에 웬일이야?”라는 기쁨 어린 답장이 온다. 그 순간, 오늘의 목표는 막차 타고 달성!
지난 50년간, 하루에 한 사람씩 적어도 1만8000명을 기분 좋게 했고, 나 또한 그만큼 뿌듯했다. 작은 양보와 칭찬, 소소한 도움으로 이 많은 사람을 기쁘게 했으니 이토록 가성비 좋은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끝까지 할 생각이다. 다리에 힘이 없어도,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성경에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마태 6,3)고 했는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글을 읽으며 살짝 미소 짓는 분이 있다면, 오늘의 ‘하루 한 사람 기쁘게 하기’ 목표는 성공적으로 달성한 셈이다.

글 _ 한비야 비아(국제구호전문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