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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편 그리스도인의 삶

제 3 편 그리스도인의 삶가톨릭교리서

내용

  • 제5절 다섯째 계명
  •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
  •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마태 5,21-22).
  • 2258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생성 시초부터 하느님의 창조 행위에 연결되며 또한 모든 생명의 목적이기도 한 창조주와 영원히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만이 그 시작부터 끝까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무죄한 인간의 목숨을 직접 해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33)
  • I. 인간 생명의 존중
  • 성경의 증언
  • 2259 성경은 형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이야기에서,34)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원죄의 결과인 분노와 욕망이 인간 안에 내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느님께서 형제 살해의 악랄함을 보고 말씀하셨듯이, 인간이 인간의 원수가 되었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창세 4,10-11).
  • 2260 하느님과 인류가 맺은 계약은, 하느님의 선물인 인간 생명과 인간의 살인적 폭력성을 잊지 않도록 짜여 있다.
  • 나는 너희 각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 사람의 피를 흘린 자, 그 자도 사람에 의해서 피를 흘려야 하리라.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다(창세 9,5-6).
  • 구약 성경은 항상 피를 생명의 신성한 표지로 여겼다.35) 이러한 가르침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것이다.
  • 2261 성경은 다섯째 계명이 금지하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탈출 23,7). 무죄한 사람을 일부러 살인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황금률과 창조주의 거룩하심을 중대하게 거스르는 것이다. 이러한 살인을 금지하는 법은 예외 없이 유효하다. 이 법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이 누구나 지켜야 한다.
  • 2262 주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살인해서는 안 된다.”(마태 5,21)는 계명을 상기시키시며, 여기에 분노와 증오와 복수하는 일까지 금지하신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뺨을 내밀 것과,36) 원수를 사랑할 것을37) 당신 제자들에게 요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도 당신 자신을 방어하지 않으셨으며,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도로 꽂으라고 말씀하셨다.38)
  • 정당방위
  • 2263 개인이나 집단의 정당방위는, 고의적인 살인죄가 성립되는 무죄한 사람의 살인을 금지하는 데 대한 예외가 아니다. “자기 방어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 하나는 자기 생명의 보존이요, 다른 하나는 공격자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39)……전자만이 의도적인 것이며, 후자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다.”40)
  • 2264 자기 사랑은 도덕성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존권을 존중하는 것은 정당하다. 자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공격자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다 할지라도 살인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 만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폭력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부당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방법으로 폭력을 물리친다면, 그것은 정당한 것이다.……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으려고 적절한 방어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구원에 필요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타인의 생명보다 자신의 생명을 돌볼 의무가 더 크기 때문이다.41)
  • 2265 정당방위는 권리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책임진 사람에게는 중대한 임무가 될 수 있다. 공동선을 지키려면 불의한 공격자가 해악을 끼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책임에 맡겨진 시민 공동체를 해치는 공격자들을 물리치는 데 무력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
  • 2266 인권과 시민 사회의 기본 규범을 손상시키는 행동의 확산을 억제하는 국가의 노력은 공동선 보호 요구에 부합한다. 공권력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형벌을 부과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형벌의 첫째 목표는 잘못으로 발생한 폐해를 바로잡는 것이다. 죄지은 사람이 이 형벌을 스스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속죄의 효과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형벌은 공공질서와 사람들의 안전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다. 형벌은 또한 치유를 위한 것으로서, 되도록 죄지은 사람의 교정에 이바지해야 한다.
  • 2267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은, 범죄자의 정체와 책임에 대한 완전한 규명이 전제되고, 불의한 공격자에게서 인간 생명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유일하고 가능한 방법이 오로지 사형뿐이라면, 사형에 의존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 그러나 만일 공격자에게서 사람들의 안전을 방어하고 보호하는 데 사형이 아닌 방법으로도 충분하다면 공권력은 그러한 방법만을 써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방법들이 공동선의 실제 조건에 더 잘 부합하기 때문이며, 인간의 품위에 더욱 적합하기 때문이다.
  • 오늘날은 참으로 범죄자의 자기 구제 가능성을 결정적으로 박탈하지 않고서도, 범죄자가 해를 끼칠 수 없게 하여 국가가 효과적으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피고를 사형해야 할 절대적 필요성이 있는 사건은 “실제로 전혀 없지는 않더라도 매우 드물다.”42)
  • 고의적인 살인
  • 2268 다섯째 계명은 직접적이고 고의적인 살인을 중대한 죄로 금하고 있다. 살인자와 살인에 일부러 협력하는 자는 하늘을 향해 복수를 부르짖게 하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43)
  • 천부의 유대를 파괴하기 때문에, 유아 살해,44) 형제 살해, 부모 살해와 배우자 살해는 특별히 중한 죄이다. 우생학이나 국민 건강이라는 구실로 행해지는 어떤 살인도, 공권력이 명령하는 것까지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 2269 다섯째 계명은 어떤 사람을 간접적으로나마 죽이려는 의향으로 자행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한다. 도덕률은 중대한 이유 없이 어떤 사람을 죽을 위험에 놓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위험에 놓인 사람에게 도움을 거절하는 것을 금한다.
  • 인간 사회가 기근으로 사람들이 죽어 가는 데 대하여 구제책을 세우고자 노력하지 않고 묵인하는 것은 파렴치한 불의이며 중대한 죄이다. 폭리를 추구하며 탐욕스러운 행위로 인류 형제의 굶주림과 죽음을 유발시키는 상인들은 간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며, 그 책임은 그들에게 돌아간다.45)
  • 본의 아닌 살인은 도덕적으로 책임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적합한 이유 없이 죽음을 초래하게 하는 행동을 했다면, 비록 살해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중죄를 면하지 못한다.
  • 낙태
  • 2270 인간의 생명은 임신되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인간은 존재하는 첫 순간부터, 인간의 권리들을 인정받아야 하며, 그중에는 모든 무죄한 이들의 생명 불가침의 권리도 포함되어 있다.46)
  •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예레 1,5).
  • 제가 남몰래 만들어질 때, 제가 땅 깊은 곳에서 짜일 때, 제 뼈대는 당신께 감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시편 139[138],15).
  • 2271 교회는 1세기부터 모든 인위적 낙태를 도덕적인 악으로 단정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변하지 않았으며, 불변하는 것으로 존속한다. 직접 낙태, 곧 목적이나 수단으로서 의도한 낙태는 도덕률의 중대한 위반이다.
  • 낙태로 태아를 죽이지 말고, 갓난아이를 죽이지도 마시오.47)
  •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생명 보존이라는 숭고한 직무를 인간에게 맡기시어 인간 품위에 알맞은 방법으로 이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생명은 임신 순간부터 최대의 배려로 보호받아야 한다. 낙태와 유아 살해는 흉악한 죄악이다.48)
  • 2272 낙태에 대한 분명한 협력은 중죄가 된다. 교회는 인간 생명을 거스르는 이 죄를 교회법적 벌인 파문으로 제재한다. “범죄 사실 자체로”,49) 그리고 교회법으로 정해진 조건들에 따라,50) “낙태를 주선하여 그 효과를 얻는 자는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는다.”51)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가 자비의 영역을 제한하려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이 범죄의 중대함과, 죽임을 당한 무고한 태아와, 그 부모와 그리고 사회 전체에 끼친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표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 2273 무죄한 모든 개개인의 생명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는 시민 사회와 그 법률의 기본 요소가 된다.
  • “시민 사회와 정치권력은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들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의 권리는 어느 개인이나 또는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어느 사회나 국가가 특권으로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 본성에 속하는 것이며, 사람의 기원이 되는 창조 행위로써 인간 안에 타고난 것이다. 이러한 기본권 가운데, 임신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모든 인간이 갖는 생명권과 육체적 완전성에 대한 권리를 지적해야만 한다.”52)
  • “일단 민법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의 보호를 실정법이 어떤 범주의 사람들에게서 박탈한 순간, 국가는 법 앞에 모두 평등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가 개개 시민의 권리, 특히 더 힘이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해 주지 않을 경우 법치 국가의 기초는 흔들리게 마련이다.……임신되는 순간부터 보장되어야 할 출생 전의 아이에 대한 존중과 보호 의무에 따라서, 법은 아이의 권리를 의도적으로 박탈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 적절한 법적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53)
  • 2274 배아는 임신되는 순간부터 인간 대우를 받아야 하므로, 가능한 대로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완전하게 보호받고, 보살핌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 산전 진단(産前診斷)은 “배아의 생명과 온전성을 지키고 배아를 하나의 개체로서 보호하거나 치료할 목적으로 행해진다면,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진단 결과에 따라서는 유산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도덕률을 심히 거스르는 것이 된다. 진단이란 사형 선고와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54)
  • 2275 “인간 배아에 대한 개입은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만 받아들일 수 있다. 곧 배아의 생명과 온전성을 존중하여야 하고, 배아에게 부적절한 위험이 없어야 하며, 질병 치료, 건강 상태의 호전 또는 개별 태아 자체의 온전한 생존을 지향하는 개입이어야 한다.”55)
  •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생물학적 실험 재료’로 쓰려고 배아를 만들어 내는 일은 부도덕하다.”56)
  • “염색체나 유전 물질을 변화시키려는 일부 시도들은, 치료 목적이 아니라 특정 성(性)이나 미리 정한 다른 기준에 따라서 우수한 인간을 선택적으로 만들어 내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조작들은 인간 존재의 개별적인 존엄성과 온전성, 그리고 (그 유일하고 다수로 복사될 수 없는) 주체성에 어긋나는 것이다.”57)
  • 안락사
  • 2276 생명력이 감소되고 쇠퇴되어 가는 사람들을 특별히 존중해야 한다. 병자들이나 신체 장애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아야 한다.
  • 2277 동기나 수단이 어떻든, 직접적인 안락사는 신체 장애인, 병자 또는 임종을 목전에 둔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것이다. 안락사는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
  • 그러므로 고통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사람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죽게 하는 행위나 그 행위를 묵인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그의 창조주이신 살아 계신 하느님에 대한 존중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언제나 단죄되고 배척되어야 하는 이 살인 행위는, 아무리 선의에서 빚어진 오판의 결과라고 해도, 본질적으로는 그대로 살인 행위이다.58)
  • 2278 비용이 크게 들고 위험하며 특수하거나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의료 기구의 사용 중단은 정당할 수 있다. 그런 경우는 ‘지나친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의료 기구 사용을 중단)할 때에는, (환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막을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환자가 자격과 능력을 가졌을 경우에는 환자 본인이 (중단) 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법적 보호자들이 결정해야 하는데, 언제나 환자의 타당한 소원과 정당한 이익을 존중하는 가운데 결정해야 한다.
  • 2279 죽음이 임박한 것으로 여겨지더라도, 환자에게 일반적으로 베풀어야 하는 치료 행위를 중단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수명을 단축시킬 위험이 있더라도, 죽어 가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그리고 환자의 죽음을 목적으로나 수단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죽음이 예견되고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된다면, 진통제 사용은 인간의 존엄성에 도덕적으로 부합될 수도 있다. 진통제를 쓰는 치료는 사심 없는 사랑의 행위이다. 따라서 이 치료 행위는 장려되어야 한다.
  • 자살
  • 2280 사람은 저마다 자기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 앞에서 자기 생명에 책임을 져야 한다. 생명의 최고 주권자는 바로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생명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 하느님의 영광과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해 보존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생명의 관리자이지 소유주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
  • 2281 자살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고 영속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적 경향에 상반되는 것이다. 또 올바른 자기 사랑에도 크게 어긋난다. 그와 동시에 자살은 이웃 사랑도 어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살은 우리가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가정, 국가, 인류 사회와 맺는 연대 관계를 부당하게 파괴하기 때문이다. 자살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사랑에 어긋나는 것이다.
  • 2282 만일 자살이 시범적으로, 특히 젊은이들에게 본보기로 행해진다면, 이것은 죄로 이끄는 유혹이라는 매우 악한 표양이 되는 것이다. 자살 방조는 도덕률에 어긋난다.
  • 중한 정신 장애나, 시련, 고통 또는 고문으로 겪는 불안이나 심한 두려움은 자살자의 책임을 경감시킬 수 있다.
  • 2283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에 대해 절망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만이 아시는 길을 통해서 그들에게 구원에 필요한 회개의 기회를 주실 수 있다. 교회는 자기 생명을 끊어 버린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 II. 인간 존엄성의 존중
  • 타인의 영혼 존중: 악한 표양
  • 2284 악한 표양(스캔들)은 악을 저지르도록 타인을 이끄는 태도나 행위이다. 악한 표양을 보이는 사람은 이웃을 악으로 이끄는 유혹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덕과 정의에 해를 끼침으로써, 그의 형제를 영적 죽음으로 이끌어 들일 수 있다. 만일 어떤 행위나 부작위로 일부러 타인이 심각한 과실을 저지르게 한다면, 그 악한 표양은 중죄가 된다.
  • 2285 악한 표양은, 그것을 보이는 사람의 권위나 그것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의 약함 때문에 특별한 중대성을 띠게 된다. 이 악한 표양은 우리 주님께 다음과 같은 저주를 불러일으켰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지는 편이 낫다”(마태 18,6).59) 본성이나 직무에 따라 다른 이들을 가르치고 교육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악한 표양을 보인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악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점에 대해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양의 탈을 쓴 이리로 비유하신다.60)
  • 2286 악한 표양은 법이나 제도, 유행이나 여론 등으로 유발될 수 있다.
  • 그러므로 풍속의 퇴폐나 종교 생활의 타락, 또는 “고의적이건 아니건 계명에 합치되는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을 어렵게 하거나 실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들”61)로 이끄는 법이나 사회 구조를 촉구하는 사람들은 악한 표양을 보이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부정 행위를 조장하는 규칙을 정하는 기업주들이나,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성나게 하는”62) 교사들, 그리고 여론을 조작하여 도덕적 가치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람들도 똑같은 죄를 짓는 것이다.
  • 2287 다른 사람들이 악을 행하도록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사용하는 사람은 악한 표양을 보이는 죄를 짓는 것이며, 직접으로든 간접으로든 자기가 조장한 악에 책임이 있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루카 17,1)
  • 건강 존중
  • 2288 생명과 신체의 건강은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값진 재산이다. 우리는 타인의 필요와 공동선을 참작하면서 이 재산을 분별 있게 돌보아야 한다.
  • 시민들의 건강을 돌보려면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게 해 주는 생활 여건, 곧 의식주, 보건, 기초 교육, 직업, 사회복지 등이 갖추어지도록 사회가 도와야 한다.
  • 2289 윤리적으로 육신 생명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육신 생명이 절대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윤리는 육신의 숭배를 촉진시키고, 육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며, 완벽한 육체와 스포츠의 성공을 우상화하는 경향의 새로운 이교도적 정신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강한 자와 약한 자 중에서 선별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타락시킬 수 있다.
  • 2290 절제의 덕은 음식, 술, 담배, 약물의 남용 등 온갖 형태의 과잉을 피하게 한다. 술취한 상태에서나, 속도에 대한 무절제한 취미로 도로나 바다, 하늘에서 타인과 자신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사람들은 중죄를 짓는 것이다.
  • 2291 마약 사용은 인간의 건강과 생명에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 마약 사용은 다만 직접 치료를 위한 처방의 경우가 아니면 중죄이다. 마약의 밀조와 밀매는 파렴치한 행위이며, 이는 도덕률을 심각하게 어기는 행위를 조장하기 때문에 범죄에 직접 협력하는 것이다.
  • 인간 존중과 과학 연구
  • 2292 개인이나 인간 집단에 대한 과학적, 의학적, 또는 심리학적 실험은 병의 치료나 공중 보건의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2293 기초 과학 연구는 응용 과학 연구와 함께 만물에 대한 인간 지배권의 중요한 표현이 된다. 과학과 기술이 인간에게 봉사하는 데 사용되고, 모든 사람을 위한 전인적 발전을 촉진할 때, 이는 귀중한 자원이 된다. 그러나 이것들만으로는 인생의 의미와 인간 발전의 의미를 보여 줄 수 없다. 과학과 기술은 그것을 개발하고 발전시킨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인간의 도덕적 가치에 비추어, 과학과 기술은 그 궁극의 목적과 한계 범위가 정해지는 것이다.
  • 2294 과학 연구와 그 응용에서 도덕적인 중립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은 환상이다. 반면, 그 방향 결정의 기준들은, 기술의 단순한 효율성이나,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어떤 사람들을 위하는 효용이나, 최악의 경우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등 그 어느 것에서도 추론될 수 없다. 과학과 기술은 그 본질적 의미로 보아서, 도덕의 근본 기준들을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 과학과 기술은 하느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인간과 그 양도할 수 없는 권리, 그리고 그의 참되고 전적인 선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 2295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률에 어긋나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와 실험은 그 자체로 정당한 행위일 수 없다. 비록 피실험자들의 동의가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들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만일 실험 대상자의 생명이나 그 육체적, 정신적 완전성에 피할 수 없는 지나친 위험을 겪게 하는 것이라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도덕적으로 부당한 것이다. 또 피실험자나 그 보호자의 명백한 동의 없이 행해지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 2296 장기 이식은 제공자가 겪는 신체적, 정신적 손상과 위험률이 그 장기를 받는 사람이 얻고자 하는 선익과 균형을 이룬다면 도덕률에 부합된다. 죽은 뒤의 장기 기증은 훌륭하고 칭찬받을 일이며 헌신적인 연대의 표징으로서 장려되어야 한다. 장기 이식은 제공자나 그 보호자의 분명한 동의 없이는,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지연시키기 위한 것이라 해도, 사람을 불구로 만드는 적출이나 죽음을 직접 유발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 육체의 완전성에 대한 존중
  • 2297 사람을 납치하고 인질로 삼는 것은 사회 안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피랍자를 위협하여 그에게 견딜 수 없는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도덕적으로 부당하다. 폭력 행위(테러리즘)는 사람을 무차별로 위협하고 상처를 입히고 죽인다. 폭력 행위는 정의와 사랑에 크게 어긋난다.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서, 죄인들을 처벌하기 위해서, 반대자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증오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육체적 또는 정신적 폭력을 사용하는 고문은 인간 존중과 인간 존엄성에 어긋난다. 엄밀한 의미에서 치료를 위한 처방의 경우가 아니라면 고의적이고 직접적인 수족 절단, 신체 상해, 불임 수술은 도덕률에 어긋난다.63)
  • 2298 과거에는 합법적 정부들이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가혹 행위들을 다반사로 자행했으며, 이런 경우 흔히 교회의 사목자들은 이에 항의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교회의 사목자 자신들도 교회의 법정에서 고문에 관한 로마법의 규정들을 받아들였었다. 이런 유감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교회는 늘 관용과 자비의 의무를 가르쳐 왔으며, 성직자들에게 피 흘리는 일을 금하였다. 근래에 와서, 그 같은 가혹 행위들은, 공공질서를 위해 필요한 것도 아니었으며 인간의 정당한 권리에 합치하는 것도 아니었음이 명백해졌다. 오히려 그런 행위들은 더욱 나쁜 타락으로 이끌어 간다. 그러므로 그런 관습들을 없애려고 노력해야 하며, 희생자들과 가해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 죽은 이들에 대한 존경
  • 2299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에게는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 그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품위 있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들과 가까운 친지들은 기도로써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친지들은 적당한 때에, 병자들이 살아 계신 하느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성사들을 받도록 주선해야 한다.
  • 2300 죽은 이들의 시신은 부활에 대한 신앙과 희망 안에서 존경과 사랑으로 다루어야 한다. 죽은 이들을 장사 지내는 것은 신체에 자비를 베푸는 일이며,64) 이것은 성령의 궁전인 하느님의 자녀들을 명예롭게 하는 일이다.
  • 2301 법률 수사나 과학 연구가 그 동기인 시체 해부는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죽으면 무상으로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것은 합법적이고 장한 일이다. 육신 부활의 신앙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교회는 화장을 허락한다.65)
  • III. 평화의 보호
  • 평화
  • 2302 우리 주님께서는 “살인해서는 안 된다.”(마태 5,21)는 계명을 상기시키심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요구하시며 살의를 품은 분노와 증오의 부도덕성을 고발하신다.
  • 분노는 복수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의 악에 대해 복수하고자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악습을 교정하고 정의의 선을 보존하기 위해서”66) 보상을 부과하는 것은 잘 하는 일이다. 만일 분노로 해서 이웃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히거나 이웃을 죽이기를 원하기까지 한다면 이는 사랑을 크게 어기는 것이므로, 죽을죄에 해당된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마태 5,22).
  • 2303 의도적인 증오는 사랑에 어긋난다. 이웃에 대한 증오는 이웃이 잘못되기를 일부러 바랄 때 죄가 된다. 일부러 이웃이 심한 손해를 입기를 염원할 때, 이웃에 대한 증오는 중죄가 된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4-45).
  • 2304 인간 생명의 존중과 증진에는 평화가 필요하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만도 아니고, 적대 세력들 사이의 균형을 보장하는 데 그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의 선익 보호, 사람들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 소통, 사람들과 민족의 존엄성 중시, 형제애의 끊임없는 실천 등이 없이는 평화는 지상에서 실현될 수 없다. 평화는 “질서의 고요함”67)이다. 평화는 “정의의 결과”(이사 32,17)이며 사랑의 결실이다.68)
  • 2305 지상의 평화는 메시아이시며 “평화의 군왕”(이사 9,5)이신 그리스도의 평화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 열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적개심을 없애셨고”(에페 2,16),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으며,69) 당신 교회를 인간과 인간이 하나 되고 또한 하느님과 인류가 하나 되는 일치의 성사로 세우셨다.70)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그리스도께서는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 하고 선언하신다.
  • 2306 난폭하고 무자비한 행위를 포기하고,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 취하는 방어 수단을 택하는 사람들은 복음의 사랑을 증언하는 이들이다. 여기에는 다만 타인과 사회의 권리와 의무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그 사람들은 폭력에 의지하는 것이 파괴와 죽음을 포함하여, 대단히 큰 물질적 정신적 위험을 몰고 온다는 것을 정당하게 증언한다.71)
  • 전쟁을 피함
  • 2307 다섯째 계명은 인간의 생명을 일부러 파괴하는 것을 금지한다. 모든 전쟁이 초래하는 불행과 불의 때문에, 교회는 선하신 하느님께서 오랜 전쟁의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도록 모든 이가 기도하고 행동할 것을 간곡히 촉구한다.72)
  • 2308 모든 시민과 모든 위정자들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진력할 의무가 있다.
  • 그러나 “전쟁의 위험이 있고 적절한 힘을 지닌 관할 국제 권위가 없는 동안에는, 참으로 평화 협상의 모든 방법을 다 써 본 정부들의 정당 방위권은 부정할 수 없다.”73)
  • 2309 무력을 통한 정당방위에 대한 엄격한 조건들을 엄밀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이는 중대한 결정이므로 무력을 쓰는 정당방위는 도덕적 정당성의 엄중한 조건들을 따라야 한다. 이 결정은 아래 조건들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
  • - 공격자가 국가나 국제 공동체에 가한 피해가 계속적이고 심각하며 확실해야 한다.
  • - 이를 제지할 다른 모든 방법들이 실행 불가능하거나 효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야 한다.
  • - 성공의 조건들이 수립되어야 한다.
  • - 제거되어야 할 악보다 더 큰 악과 폐해가 무력 사용으로 초래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 판단에서 현대 무기의 파괴력을 신중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 이 조건들이 이른바 ‘정당한 전쟁’에 대한 교리에서 열거되는 전통적 요소들이다.
  • 이 같은 도덕적 정당성의 조건들에 대한 평가는 공동선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신중한 판단에 달렸다.
  • 2310 이런 경우 공권력은 국민들에게 국가 방위에 필요한 의무를 부과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 군인 생활로 조국에 대한 봉사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위한 역군이다. 이 임무를 올바로 수행한다면, 그들은 참으로 국가의 공동선과 평화 유지에 기여하는 것이다.74)
  • 2311 양심상의 이유로 무기 사용을 거부하며 다른 방법으로 인간 공동체에 봉사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국가가 공정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75)
  • 2312 교회와 인간 이성은 무력 충돌 중에도 도덕률은 영구히 유효하다는 것을 선언한다. “불행히도 전쟁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전쟁 그 자체로 적대 편의 모든 행동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76)
  • 2313 비전투원과 부상병과 포로들을 존중하고 인간답게 대우해야 한다.
  • 국제법과 그 원칙에 어긋나는 고의적 행동과 그것을 지시하는 명령들은 죄이다. 맹목적인 복종이라고 해도, 이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들은 무죄일 수 없다. 따라서 어떤 민족이나 국민이나 소수 민족에 대한 집단 학살은 죽을죄로 단죄되어야 한다. “종족 말살”의 명령에는 항거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 2314 “도시 전체나 광범한 지역과 그 주민들에게 무차별 파괴를 자행하는 모든 전쟁 행위는 하느님을 거스르고 인간 자신을 거스르는 범죄이다. 이는 확고히 또 단호히 단죄받아야 한다.”77) 현대전의 위험은 과학 무기, 특히 원자 무기, 생물학 무기 또는 화학 무기의 보유자들에게 이러한 범죄 행위를 저지를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
  • 2315 많은 사람들은 무기의 비축을 가상의 적에게 전쟁을 단념하도록 하는 역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것을 국가들 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가장 유효한 것으로 여긴다. 그렇지만 그 같은 전쟁 억제 수단과 관련하여 막중한 도덕적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 군비 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다. 언제나 새로운 무기를 마련하는 데에 소요되는 엄청난 재원의 낭비는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를 막고,78) 민족들의 발전을 방해한다. 과잉 군비는 분쟁의 원인을 증가시키고, 분쟁이 확산될 위험을 증대시킨다.
  • 2316 무기의 생산과 거래는 국가들과 국제 공동체의 공동선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공권력은 이를 규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개인이나 집단의 단기적 이윤 추구가 국가들 사이에서 폭력과 분쟁을 불러일으키고 국제적 법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기도들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 2317 개인들과 국가들 사이에 만연된 불의와, 경제 사회 분야의 지나친 불공정과 불평등, 시기, 불신과 교만은 끊임없이 평화를 위협하며 전쟁의 원인이 된다. 이런 폐단을 극복하기 위한 모든 활동은 평화를 이룩하고 전쟁을 피하는 데에 이바지한다.
  • 인간은 죄인이므로, 전쟁의 위험이 인간을 위협하고 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러하겠지만, 인간이 사랑으로 결합되어 죄를 극복하는 그만큼 폭력도 극복할 것이다. 그때에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백성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이사 2,4).79)
  • 간추림
  • 2318 “그분의 손에 모든 생물의 목숨과 모든 육체의 숨결이 달려 있음을”(욥 12,10).
  • 2319 모든 사람의 생명은 임신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신성하다. 살아 계시고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을, 바로 그 자체를 위하여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 2320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창조주의 거룩하심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 2321 살인 금지는 부당한 공격자가 사람을 해칠 수 없게 하려는 권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생명이나 공동선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당 방위는 중대한 의무이다.
  • 2322 아기는 임신되는 순간부터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직접적인 낙태, 곧 목적이나 수단으로서 행한 고의적 낙태는 도덕률을 크게 어기는 “파렴치한 행위”80)이다. 교회는 인간의 생명을 거스르는 이 죄를 교회법적 형벌인 파문으로 제재한다.
  • 2323 배아는 임신되는 순간부터 인격체로 대우를 받아야 하므로,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완전하게 보호받고, 보살핌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 2324 방법과 동기가 어떻든, 고의적인 안락사는 살인죄이다. 안락사는 인간의 존엄성과 그의 창조주이신 살아 계신 하느님에 대한 존경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 2325 자살은 정의와 희망과 사랑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다섯째 계명은 자살을 금지한다.
  • 2326 어떤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이가 중죄를 짓도록 일부러 유도할 때, 이는 악한 표양으로서 중죄가 된다.
  • 2327 모든 전쟁이 초래하는 불행과 불의 때문에 우리는 전쟁을 피하고자 가능한 모든 합리적인 방법들을 다 강구해야 한다. 교회는 “주님, 기근과 전염병과 전쟁에서 우리를 구해 주소서.” 하고 기도한다.
  • 2328 교회와 인간의 이성은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도덕률이 영구히 유효함을 천명한다. 국제법과 그 보편적 원칙을 일부러 어기는 행위들은 범죄이다.
  • 2329 군비 경쟁은 인류에게 막심한 상처를 주며, 가난한 사람들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도록 해치고 있다.81)
  • 2330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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